다윗의 찬송시 2 다윗의 찬송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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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찬송시 2

설교/시편설교

by Sungmin Kim 2016. 9. 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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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2:21-30 / 다윗의 찬송시 2

2016.08.25.

21 - 25 나의 의로운 삶에 상을 주시는 하나님

26 - 28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29 - 30 나의 등불이요 도움이신 하나님

 

1. 내용주해

 

1) 나의 의로운 삶에 상을 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지 자신을 돌아본다. 그것은 자신의 의로운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면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경건한 삶이 뒷받침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보상해 주신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모습을 내 공의”, 또는 내 손의 깨끗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지 아니했다. 그리고 그분이 정한 규례를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윗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를 지켰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원한다고 고백한다(24, ‘와에쉬탐메라샤마르의 재귀형& 미완료 청유형 ).

구체적으로 다윗은 어떤 일이든 독단적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고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또한 신명기에서 명령하고 있는 왕의 임무를 잘 지켰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17:18-19)

 

21절과 25절은 수미쌍관으로 같은 어구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 만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관계를 정결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열왕기서의 평가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열왕기상15:5)

 

 

2)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성품을 객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신실하시고 악인에 대해 보응하신다는 것이다.

. 자비한 자에게는 자비하심을 나타내시고 완전한 자에게는 완전하심을 보이신다.

새번역에는 자비한 자를 신실한 자로, 완전한 자를 흠 없는 자로 번역했다.

자비한 자(‘하씨드’)는 원문 어원이 헤세드와 같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간의 언약적인 사랑과 인자이다. 자비한 자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잘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공동체에게 베푸는 사람이다. 특히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을 환대하고 자비를 베푼다. 하나님이 자비한 분이시고(22:17) 그분의 마음을 알기에 이웃에게도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완전한 자의 뜻을 분해하면 낍보르(‘용사’) + 타밈(‘완전하여’)이다. 흠이 없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용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죄에 대해서 깨끗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완전함은 본래 하나님의 본성이다. 인간 스스로는 완전해 질 수 없다. 그러나 죄악에 대항하여 분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가 완전해 지도록 도우실 것이다.

 

 

. 깨끗한 자에게는 깨끗하심을 보이시고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신다.

깨끗한 자의 어원은 나바르이다. 제하거나 택한다는 뜻이다. 죄를 멀리하는 삶을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깨끗함을 유지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깨끗한 자로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도와 깨끗하게 살아가도록 하신다.

반면에 사악한 자의 사악은 속이거나 왜곡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신들의 뜻이 거스르도록 심판하실 것이다. 어떤 일을 꾸미든지 하나님은 그들의 뜻대로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런 예를 압살롬을 모략가가 되었던 아히도벨(16,17)에서 찾을 수 있다. 후새의 제안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하나님은 그의 제안을 수포로 만들어버리셨다. 다윗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시고 낮추신다.

곤고한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는 주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24:12; 24:9), 사회적으로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자(10:2; 35:10; 3:14), 겸손한 자(16:19; 9:9), 심령에 통회하는 자(66:2) 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아니악인에게 고난당하는 의인을 가리킨다(7:14; 3:12). 70인역에서 곤고한원어의 아니프토코스로 번역했는데, 이는 산상수훈의 심령이 가난한 자에서 쓰인 단어와 동일하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곤고함을 아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유업, 하나님나라가 그들에게 있다.

반면에 교만한 자는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살피신다. 살피신다(‘에네카’)는 뜻에는 ’(‘아인’)의 의미가 들어있다. 하나님의 눈이 그들의 행동을 보시고 그들을 강등시키신다. 시편의 병행 구절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18:27)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의 눈(‘에나임’)을 낮추셔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눈을 들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잠16:18의 말씀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3) 나의 등불이요 도움이신 하나님

 

다윗은 하나님을 등불로 묘사한다. 그의 삶에서 하나님은 앞길을 밝히셨던 분이였다. 원수들로 둘러싸여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어둠 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가야할 길을 인도하셨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셨다. 그것을 알았기에 그는 원수들의 진영에 돌진하여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다. 골리앗을 물리칠 때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달려들었다. 또한 블레셋과 싸울 때도 어떠한 장벽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돌진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앞서서 인도해주셨고 뒤에서 보호해 주셨기에 가능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2. 적용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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