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교회 소그룹 공동체 세우기
- 세미나(2017.04.02)
서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를 알고 있는 분 계신가요? 별로 유명하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중요한 세미나 강사로 부른다는 것은 그 만큼 산울교회가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겠죠?
저를 소개할 겸, 저에게 공동체를 배우고 좋은 경험을 쌓도록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먼저 이야기할까 합니다.
-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국제 선교회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여 회사에 적응했다싶을 때, IMF경제위기가 닥쳤습니다. 임원들이 명퇴 후의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북한에 관심이 있어서 중국선교단체를 알아봤지만, 가장 나에게 적합한 선교단체가 어떤 것인가 고민하고는 WEC국제선교회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를 선교사로서 잘 준비시킬 수 있는 훈련과정이 좋아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혹독한 선교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파송되어 캐나다본부에서 훈련을 받을 때, 모든 선교사들은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같은 건물 안에서 잠자는 곳만 다를 뿐, 모든 공간이 오픈되었고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식사도 주말만 빼놓고 스탭들과 같이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 한국선교사들이 적응하기 상당히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자녀들이 싸울 때, 양육방식이 다른 어른들도 덩달아 싸웠습니다. 선교사훈련생들이 사용하는 간이주방의 냉장고가 있었는데, 그 안의 저장 방식 때문에 싸웠습니다. 편이 갈리고, 이간질하는 경우까지 생겨났습니다. 싱글선교사님이 있었는데, 저희부부가 그녀를 돕는다는 것이 결국 물귀신에 잡힌 것처럼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벌거벗겨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교회가 무엇이고 선교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 BTS에서의 미셔널처치 공부와 이민교회 사역
그 이후 선교훈련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선교지를 명령받고 지역조사까지 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서울의 지역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함께 공부했던 목사님의 초청으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서 이민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기회가 되어 필라델피아에 있는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행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이 학교는 미셔널처치를 가르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 때 처음 접했지만 저는 이제 교회사역은 선교적인 관점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했던 교회사역을 신학적으로 잘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 나들목교회에서의 공동체 사역
공부를 마칠 즈음에, 뉴욕의 LFCC라는 교회에서 한어권 회중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그 회중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LFCC는 리디머교회가 개척한 한인 2세들의 영어권교회였지만 후에 영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2세들과 기타 여러 민족이 섞여있는 다민족, multi-ethnic church 였습니다. 이제 한국도 그런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가 편한 한국에서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가족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기 직전에 김형국 목사가 미국에서 나들목교회의 사역을 소개하는 세미나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미셔널처치를 배울 수 있는 적절한 교회라고 판단하고 한국에 들어올 것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3년 동안 나들목교회의 사역은 저에게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신학이었습니다. 그것을 교회 공동체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그리고 성도들이 어떻게 그 복음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이런 실제적이고 통합적인 교회사역의 방법과 내용을 다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복음에 기초한 교회사역의 핵심은 두 축으로 형성되는데, 그것은 사랑의 공동체와 선교적인 삶에 있습니다. 즉, 내부적으로 건강하고 진실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일상에서 하나님나라의 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산울교회의 사명처럼, “사랑하며, 땅끝까지” 라 할 수 있습니다.
1. 공동체의 의미
1) 소그룹 공동체의 성경적 근거
그렇다면 내부적으로 건강하고 진실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산울교회나 나들목교회와 같은 몇몇 교회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개념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하게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그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가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며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 하나님의 본성
- 공동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쓰지 않지만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공동체이며 사회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할 때, 그 형상은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사회적 하나님을 뜻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배필인 여자를 남자 몸의 일부를 취해서 만들었고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결코 홀로 될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 가능합니다.
나. 예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요17장)
-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심을 통해서 공동체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부르심
-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제자공동체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안으로 그들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요17장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데, 그 내용을 보면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그 하나됨 안에 제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들어가 계시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들이 완전하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요17:23). 그로인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셨듯이 하나님께서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 됨을 통해서 말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1차적 부르심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적 사랑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고 그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누림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a. 하나님의 가족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새번역, 엡2:19)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개역개정, 갈6:10)
-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개인적으로 천국행 티켓과 같은 확실한 구원만을 생각한다면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입양하셨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산울교회의 성도로 모인 여러분은 한 가족입니다. 그렇다면 옆 사람들을 보십시오. 한 가족처럼 여기고 있습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데, 믿음은 피보다 진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혈육보다 더 진합니다.
b. 그리스도의 몸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에 연합된 한 지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 공동체 속한 여러분은 예수님이라는 한 몸 안에 속한 한 부분입니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공통된 목표와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몸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한 몸이기 때문에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픕니다. 나의 관심과 신경이 어디에 집중되는가요? 내 몸 중에서 가장 아픈 곳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 첫째는 머리되신 예수님이며, 다음은 가장 연약한 지체입니다.
c. 성령의 전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다른 곳과 구별된 곳이며, 그곳에서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는 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거룩한 처소이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제물인 것이죠. 로마서12장에서 바울이 권면하듯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합니다. 이런 성전의식은 개별적인 측면이 강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공동체 안에서 예배드릴 때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 임재 안에서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있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한 분만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도 이 말을 할 때, 분열과 갈등이 있는 고린도교회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그들 안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라고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보내심
- 예수님의 보내심을 통해서 공동체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에 제자공동체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했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율법과 사명의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사랑하는 삶을 보고 그들과 다름을 알게 됩니다.
a. 계명(The Great Commandment):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믿음의 가족들에게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증명이 됩니다. 소그룹 공동체의 중요한 의미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베우고 실천하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b. 위임명령(The Great Commission):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는 것
- 마태복음 28:18 이하에 보면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 삼는다는 것은 복음을 전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은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족이요 그리스도 몸이며, 성령의 전으로 신분이 변화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임한 구원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히 말로 개념을 전하는 것보다는 전인격의 변화와 삶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한 영혼이 먼저 경험한 내 삶의 변화를 본받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본을 받으라고 말했을 때,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을 본받아 그렇게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마치 도제처럼 삶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의 전수는 공동체 안에서 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다. 자생력이 있는 은혜의 공급처이자 성숙의 장
위에서 설명하는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회복되면 공동체 안에서 자생적인 은혜의 샘물이 흘러나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18-20).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이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공동체에게 끝임 없이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시겠는 의미입니다. 건강하고 진실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임과 사역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갈급해하는 영혼에게 하늘의 양식을 공급하고 참 생명을 누리게 하는 일, 바로 그것이 자신의 양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무가족들에게 참 하늘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바보스럽고 손해 보는 일이며 많은 희생을 감내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영혼을 배부르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하늘 양식인 것입니다.
2) 현재 우리가 살고 세상 속에서의 의미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이런 공동체가 실현 가능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단지 성경 속에서 발견된 개념이 아닐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실은 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 현대사회의 현실: 도시의 삶
- 개인주의, 익명성, 돈의 힘, 상대적 가치 존중 ...
여전히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갇혀 살면서 돈을 좇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남의 배려에 그렇게 가치를 두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불편하고 귀찮으면 아무리 나에게 헌신을 해도 싫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나무모임을 목양하면서 경험했듯이 사랑을 베푸는 일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 현대도시인의 상실감
- 삶의 의미를 갈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심 자신의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고자 애를 씁니다. 내 인생의 가치를 높여줄 무엇인가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것이 돈이 될 수 있고, 명예가 될 수 있고, 더러는 여행이나 오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 때 상실감이 큽니다. 길 잃은 사람들은 인생의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 공동체를 일구려는 노력
또한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진실한 공동체를 찾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파행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킬수록 사람들은 더욱 기댈 수 있는 진실한 사람들을 찾습니다. 미국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동북부에 있는 미국교회들이 점점 노령화되어서 노인들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들의 부모는 베이비붐세대입니다. 경제가 급성장하는 시대에 그들 부모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들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모든 양육을 돈으로 해결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바쁘고 고단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제공하기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부모인 베이비부머세대가 이제 은퇴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맞아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다. 교회공동체가 희망이다.
-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나라를 통한 회복의 사명을 지니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희망입니다. 도시의 삶에 익숙한 이들에게 교회는 진짜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와 공동체! 소그룹 공동체는 결국 선교적인 사명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의 강압적인 통치와 혼란한 사회 속에서 무의미하고 힘없이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울타리가 됨으로서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이 개척한 대부분의 교회는 작은 소그룹 공동체와 같습니다. 한 집에서 모였기 때문에 30,40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교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책이 있습니다. “1c교회의 예배모습”이라는 책인데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서 모인 로마교회의 일상을 아주 잘 고증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푸블리우스라는 주인공이 그 가정교회 모임에 초대되어 그곳에서 행하는 의식과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 등을 보면서 탐방일기 쓰듯이 써내려간 책입니다. 예수를 전혀 알지 못한 그 주인공이 모임에서 보여준 그들의 환대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성만찬과 풍성한 식사, 그리고 민감한 노예 문제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관점으로 풀어가는 그들의 태도에 상당한 감동을 받고 돌아갑니다.
2. 나무모임
1) 교회의 조직관리? or 교회의 핵심가치?
그렇다면 이러한 중요한 성경적 의미를 담고 있는 교회의 소그룹모임은 어떠해야할까요? 유기적인 생명공동체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나무모임이 산울교회의 조직체계 안에서 구성된 하부 모임이라면 관리적 측면이 강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산울교회 공동체에 주신 사명을 위한 중요한 핵심가치라면 당연히 생명력 있게 역동적으로 성장해 가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무모임은 어떠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토의시간
지금까지 나무모임을 진단하자.
논의1. 소그룹 공동체에 대한 훈련은 어떠했는가?
-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이해를 잘 반영하였는가?
논의2. 나무지기와 산울교회공동체 전체가 잘 소통이 되었는가?
- 나무지기들이 산울교회공동체 전체의 비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목양지원과 영적 공급이 잘 되고 있었는가?
* 예화> 자연생태계: 며칠 전 숲에서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밤나무 가지에 꽃망울처럼 보이는 작은 둥지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벌레둥지였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잎사귀를 갉아먹는 벌레라도 나무에 붙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준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경쟁하듯이 숲을 이루고 있는 많은 다른 종류의 나무들은 땅 속에서 서로 연대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가장 연약한 나무에게 생명의 기운을 모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모자람 없이 생명을 유지한다고 한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일부입니다. 서로 연대하며 공동체로 살아갈 때, 진정한 생명을 느끼는 것입니다.
* 영상보기>
2) 건강한 공동체의 생태
나무모임이 예수님과 한 몸으로 연합된 유기적인 생명체로서 기능을 하도록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담아 내야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예배
- 하나님 앞과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특히 공적인 예배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전 인격적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2:2에서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 십자가를 인내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3:1에서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눈과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Fix your thought on Jesus / Fix your eyes on Jesus!
-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인격적으로 반응해야하고 찬양으로 표현해야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나를 맞추는 것이며 그분의 하신 일에 동참하는 결단이 포함되어야합니다.
- 그래서 말씀은 소그룹 안에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가 선포한 공적 설교를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서로 나누고 내 삶의 현장 속에 적용하는 방법이 매우 바람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말씀 강의 안을 만들고 마지막 부분에 나눌 질문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찬양은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과 시선을 담아내는 가사가 있는 노래가 좋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주의 말씀을 잘 적용하고 살아낼 것인지 결단하고 도움을 구하는 내용과 이 세상에 주의 나라가 회복되는 내용을 담아내십시오.
나. 양육
-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의 훈련 프로그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그룹 안에서 양육은 일대일로 이루어집니다.
* 원리: 각 개인의 신앙이 균형 있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서로 돕는다.
-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육했습니다. 3년 동안 그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나라와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듣고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한 초인이 발휘하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현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든 능력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이 그 나라의 중심에 서있으며 자신이 지금 존재함으로 하나님나라는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속 제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죽임을 당해서 악의 세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나라의 왕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보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믿음은 약했습니다.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나라의 메시아로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21장은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회복시킨 이야기입니다. 영적으로 지쳐있고 마음이 상해있는 그들을 주님은 숯불 위에 조반을 준비하셔서 그들을 먹이심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이 예수님의 양육방식입니다. 양육은 죄로 인해 상처 입은 영혼의 회복과 균형 있고 지속적인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야합니다.
* 방식: 양육을 이끄는 사람들은 나무지기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양육할 수 없습니다. 나들목교회도 초창기 어쩔 수 없이 소년소녀 가장이 많았습니다. 그 짐을 덜기 위해서 부나무지기를 두고 가족들을 양육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일대일로 하십시오.
* 내용: 한 개인의 균형있는 전인격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2-3)
그 성장은 그리스도의 형상에 초점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2:52)라고 그의 성장과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 주변의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육체와 내면이 건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명 자체가 죄로 인해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4가지 측면에서 아주 균형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a. 하나님과 관계:
대부분 성도들은 이 영역에 있어서 아주 열심입니다. 특별하게 강조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록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어떻게 알까요?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살아냄으로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도와 함께 주님과 대화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의무로 생각하면 힘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기쁨이요 특권입니다.
b. 자신과의 관계:
성도들이 신앙을 회복할 때 가장 힘든 영역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회복해야할 영역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알기 전 죄의 노예 아래 있었던 과거의 나와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지금의 나와 화해를 해야 한다. 상처입고 아파했던 마음들, 그로인해 건강하게 이웃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표출되었던 왜곡된 행동들, 절제하지 못한 죄의 습관들, 이런 것들은 죄의 권세 아래 굴복해서 살았던 고통스런 기억이며 내 과거의 자화상이다. 이제 주님의 사랑으로 그 굴레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의미는 바로 과거에 죄의 노예로 살았던 삶을 더 이상 좇지 않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이며 결단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제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믿음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 과거는 버릴 것이 아니라 회복되어야합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아물게 됩니다. 성령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아문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더 단단해져서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되게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그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철, 선함, 신실, 온유, 절제입니다. 9가지를 말하지만 한 성품의 9가지 측면입니다. 내 안에서 이런 성령의 열매가 맺히면 얼마나 좋을까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c. 성도와의 관계: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교회공동체에 속한 지체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합니다. 혼자 신앙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공동체의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한 몸의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엡2:10에는 “우리”, 즉 교회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표사합니다. 그 의미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가족이며, 그리스도의 몸이자, 성령의 전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속했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미 가족 안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엡4:3에서는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킬까요? 산울교회의 사명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배워야 잘 실천할 수 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합니다.
사랑은 희생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다른 동기나 꾸밈이 없이 진실해야합니다. 그리고 말로만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천해야합니다. 또한 내 자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기 때문에 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결단과 인내 그리고 지혜가 필요합니다. 더불어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1)의 말씀처럼 겸손하게 서로 섬겨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지체들을 끝까지 용서할 수 있어야하고 나와 다른 지체들의 성격과 행동들을 용납할 줄 알아야합니다.
d. 세상과의 관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헛갈립니다. 술, 담배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낳은 수준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았고 우리 문화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성경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삶의 기준이나 가치를 거부하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여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아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15:19)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되어 선택받은 왕같이 고귀한 제사장의 임무를 맡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벧전2:19)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그 구별의 기준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요 시민으로서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빌3:20-21)
시민으로서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직은 죄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어서 악한 세력이 우리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드러내야합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나 일상의 노동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나 상전을 가족 또는 주님처럼 대하는 모든 일상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창1:27-28)
우리 스스로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그 가치관을 따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악을 바로 잡고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합니다. 공의와 사랑은 하나님의 통치방식입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89:14,새번역)
이렇게 살아가면 반드시 우리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과 그들에게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벧전3:15-16)
이렇게 네 가지 영역에서 바르고 균형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양육입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이 양육과정은 기초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기반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살아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양육은 마치 자동차 휠 얼라이먼트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균형을 잃은 바퀴를 제대로 굴러가도록 잡아주는 것이죠. 이제 생명의 길로 운전하며 달려가야 하는 것은 운전자의 몫입니다.
다. 교제
교제는 정기적인 모임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친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치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a. 1의 일치: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관계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신세타령까지 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보통사람들이 주로 여자들은 친해지면 수다를 떨거나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솔직하게 말을 합니다. 이런 만남이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무모임에서 이런 관계형성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1의 일치의 관계가 잘 형성이 되어야 그 다음 일치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모이고 MT를 떠나고 가끔 번개팅도 하십시오.
b. 2의 일치: 그리스도가 서로의 공통분모가 되는 관계
대부분 성도들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말합니다. 서로가 자기 삶속에서 간섭하시는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의 공통의 관심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관계입니다. 조금씩 그리스도와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c. 3의 일치: 서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관계
나무모임의 가족들이 서로를 통해서 영향을 주고받아 완전하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신세타령하는 가족에게 받아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해주고 변화되도록 도와주는 관계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소그룹 공동체 안에는 갈등의 요소가 많습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는 상당한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영적으로 책임을 지고 진실하게 헌신을 합니다. 평생 신앙의 동반자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여깁니다. 더러는 함께 공동주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 사역
산울교회를 넘어서서 세상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이스라엘공동체가 고아와 나그네, 그리고 이방인들을 품으라고 명령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세상의 목마르고 굶주리며 억울하게 갇힌 소자를 돌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에 반응하며 행하는 모든 사역이 변혁사역이라고 말합니다.
단,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우리가 하는 사역은 사회복지관처럼 구제사역으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변혁사역은 복음의 증인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공의를 실천하여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것입니다. 산울교회 차원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나무모임에서 독립적이면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권면하십시오. 나들목교회는 기본적으로 각 가정교회가 변혁사혁을 하는 선교사나 단체를 돕고 있고 동시에 스스로 변혁사혁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하밥집(바나바하우스)입니다. 목자 한 사람이 컵 라면 몇 개로 노숙자를 돕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가정교회 전체가 밥퍼주는 일과 재활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가정교회가 타문화선교를 하고 있고 매칭펀드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3. 나무지기
1) 산울교회 안에서 나무지기
가. 산울교회의 영적 지도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정적인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는 사역자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직회와 같은 실행위원이나 당회원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무지기는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나무지기는 교회행정조직의 구성원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공동체를 세우고 성도들의 영적인 돌봄을 하는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나무지기는 담임목사와 동역자이며, 궁극적으로 목자장이신 예수님의 목양사역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들목교회는 요21:16의 말씀을 인용하여 목자 임명패를 줍니다.
교회의 중직을 임명할 때도 나무지기는 그 중심에 있습니다.
나무지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직이 되고 당회원이 되는 시스템이 바람직합니다. 현재 나무지기를 하지 않더라도 수년의 걸쳐 나무지기의 섬김이 있는 자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나. 공동체에서 안수 받은 영적 부모
나무지기는 전체 산울교회에서 나무공동체를 세우고 돌보도록 위임받은 영적 부모입니다. 나무지기 파송식을 통해서 공동체의 위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나무가족들은 나무지기를 목자로 존중하고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나무지기는 예수님을 본받아 나무가족들을 사랑으로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다. 산울교회의 전적인 지원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
산울교회의 지원 아래 특별한 모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모임을 통해서 영적인 공급을 얻을 수 있어야합니다.
- 나무지기 영적 수양회: 2회/ 1년, 교제와 회복, 훈련과 비전 나눔
- 정기적인 모임 또는 예배: 매주 나무지기기도회(예배)
라. 숲 모임 안에서의 역할
산울교회 안에서 나무지기의 훈련과 모임이 있지만 같은 숲 모임안의 나무지기끼리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 숲별로 나무지기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교제하고 숲의 사업들을 계획하고 나눈다.
- 숲별 나무지기들이 자유롭게 1박2일 영성과 회복 기도회를 갖는다.
2) 나무지기 훈련
가. 균형 있고 지속적인 성장의 원리
- 성장과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득도한 사람은 대단한 영적인 거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장이 멈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충만하게 이르기까지 자라나야합니다. 나무지기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림표>
나. 성장단계
a. 영적 아이: 복음의 확신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시기
→ 복음의 기초를 세워준다.
b. 영적 청년: 영적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는 시기
→ 복음의 기초 위에서 연습하게 한다.
c. 영적 부모: 복음을 재생산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시기
→ 주님과 동역자로서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다. 성장 단계에 따른 훈련
나무지기 훈련은 단독적이고 배타적인 프로그램으로 하지 않습니다. 즉, 나무지기훈련과정이 있지만 전 단계의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아이나 청년의 성장과정 없이 바로 부모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진행합니다.
- 풍성한 삶의 디딤돌: 복음의 기초를 배움
- 하늘가족(가정교회)디딤돌: 공동체와 교회의 사명과 철학, 비전을 배움
- 언약가족 디딤돌: 하나님나라의 신학과 양육하는 법을 배움
- 헌신가족 디딤돌: 소그룹공동체를 세우고 목양하는 법을 배움
3) 나무모임 안에서 나무지기
가. 영적 부모로서 권위
나무지기는 어린 나무가족들을 양육하고 보호할 책임과 그들을 훈육할 수 있는 영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나무가족들은 나무지기를 영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게 되고 나무지기의 신앙을 본받게 됩니다. 나무지기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보람입니다. 언젠가 나무원들이 결혼하듯이 분가할 때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줄 것입니다.
나. 개인의 성장
성장은 배우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가르치고 양육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부모를 이해하고 성장하듯이 말입니다.
*속 섞이는 가족들...
영적인 부모가 되면서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참된 제자가 되는 기쁨인 것이죠.
다. 복음 전수자로서의 영광
아이를 낳는 것은 그 만큼 힘든 해산의 고통이 있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나 강건하게 공동체와 이웃을 섬기게 되고 또 다른 복음의 생명을 낳는 것 만큼 더 복된 일이 있을까요? 복음의 되물림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는 일은 아주 영광스런 일입니다.
3) 나무지기의 꿈
- 사람을 세우는 영적 부모 vs. 산울교회에 충성하는 일꾼
- 복음의 전수자 vs. 종교의 소비자
여러분은 왜 나무지기가 되려고 하십니까? 여러분이 새로운 담임목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새롭게 개편하고 그에 충성할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셨습니까? 산울교회가 제공하는 여러 종교적인 축복들을 좀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있지는 않는지요?
사이머 사이넥이라는 사람이 골들서클이라는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고, 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무지기가 되면 무엇을 하지, 이런 저런 봉사와 헌신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지치고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 물어보면, 그 때서야 왜 이런 힘든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러려고 나무지기가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합니다. What에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죠.
왜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힘듭니다. 왜는 사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사명을 받았는가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지 원칙을 세우십시오. 그런 다음 나무모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목표와 전략을 세워 실행하십시오.
● 골든서클(사이넥)
나무지기는 버거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듯이 그런 고난과 희생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나무지기가 된다고 해서 특별한 복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죄의 세력은 힘을 잃었지만 아직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파괴되고 깨어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일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나무지기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 상처입은 영혼들, 사랑을 갈급해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차적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지체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이 섬기는 나무모임이 세상 속에 하나님나라를 증거 하게 합니다. 그래서 나무지기의 삶은 십자가의 길임과 동시에 영광의 길입니다. 한 영혼 영혼이 나무지기의 섬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부담스러운가요?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가족들이 목자의 삶을 증언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내가 돌보았던 사람들, 나무모임 안에서 회복되고 치유되었던 사람들이 꽃다발처럼 묶여서 주님께 바쳐진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제자인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양들을 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돕게 하셨고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그 일을 감당하도록 도우시고 계십니다. 나무지기가 섬기는 작은 공동체가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고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꿈이 바로 진실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오실 때, 그 때 하나님나라는 완성되어 온전한 회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나무지기는 그 예수님의 꿈에 동참하여 주님과 함께 그 사역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꺼이 동참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동참과 헌신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고 그 사랑의 공동체는 그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며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선교의 공동체 될 것입니다.
결론: 나무모임은 하나님나라의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풍성함을 누리는 회복의 공동체이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나무지기는 나무모임을 세우고 목양하는 예수님의 동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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