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공동체를 기대하며.. 완전한 공동체를 기대하며..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완전한 공동체를 기대하며..

설교/누가복음설교

by Sungmin Kim 2017. 6. 22. 09:46

본문

완전한 공동체를 기대하며...(15:1-7)20170430

 



지난 주 토요일에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목포신항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미수급자 가족인 다윤이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사실 미국에 있는 한 작은 교회에서 모금한 금액을 어떻게 전달해야할까 의논하기 위해서였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수습자가족이 416유가족협의회에 대한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수습된 시신을 찾는 것인데 모든 것이 다 해결된 양, 유가족들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시신을 모두 발견한 이후에 해야한다고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두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박종운 변호사님께 여쭤보았습니다. 박변호사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하더군요.

 

미수습자를 포함하여 관련된 모든 이들이 유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그동안 정부와 문제해결을 위해 투쟁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 중에 미수습자들을 좀 더 고려하다보니 정부에 강하게 요구해야하는 상황에서 물러서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나 배가 올라오지 못할까, 그래서 시신을 찾지 못할까 염려하여 유가족의 집행부를 믿기 보다는 해수부의 제안에 더욱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는 것이죠. 해수부는 그런 미수습자가족 정황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배가 올라와서 시신을 찾는 과정에서 아주 극렬하게 가족들끼리 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가장 마음이 아프고 상한 사람들이 미수습자가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금 다른 유가족들도 그것을 알기에 속상하지만 어떠한 대응을 하기 보다는 인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들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3자의 입장에서는 시신을 찾은 유가족이든 미수습자가족이든 모두가 피해자이며 국가로부터 보상과 배상을 받아야할 자들입니다. 그들 모두가 같은 가족이며 상처 입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함께 힘을 모아 진실과 공의를 위해 싸워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더러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그 공동체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어쩌면 그들이 오늘 성경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100마리의 양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본래 한 무리에 속하였습니다. 함께 풀을 뜯고 생활하며 목자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마리의 양이 무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몇 가지 개연성을 가지고 유추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신에 속한 무리가 싫거나, 자신의 욕망을 쫓아 더 좋은 풀이 있을 것 같아 무리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며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길을 잃어버렸거나 한참 정신없이 풀을 뜯다보니까 나머지 99마리가 나를 버리고 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한 마리의 양이 잃어버린 생명이라고 우리는 늘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헤매고 있고 상처입고 고통 받는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99마리의 양들은 그 잃어버린 양과는 상관없이 안전하고 평안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99마리가 완전한 무리일가요? 다시 말해서 원래 있었던 한 마리의 양이 없는 99마의 공동체가 목자가 보기에 완전한 공동체일까요?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으면서 이야기 하고 싶은 핵심은 무엇일까요? 단지 한 마리의 양을 찾는데 관심을 두셨을까요?

 

비슷한 다른 두 이야기를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이 동전 한 닢을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에서는 배경설명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 동전은 10개의 묶음에서 벗어났다고 여러 문헌에서 설명합니다. 한 동전이 그 10개의 묶음 안에 있을 때, 완전한 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한 드라크마를 집안을 뒤져서 찾아냅니다. 그 한 동전이 없는 나머지 9개의 동전은 안전하지만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와 고향을 떠났습니다. 떠난 이유는 명확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쫓아 아버지를 욕보이며 떠난 것이지요. 포기해도 별반 아쉬울 것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족 안에 한 상에 둘러서 함께 식사해야할 한 아들이 없습니다. 아무리 맛난 음식으로 진수성찬을 누린다하더라도 있어야할 아들이 없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추가되니까 아무리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결국 이 세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의 완전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있어야할 것들이 바로 갖춰질 때 우리는 완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완전함을 충만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바로 완전함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완전한가요? 있어야할 사람들이 제대로 그 자리에 있나요? 마땅히 생각하고 실천해야할 진리가 늘 우리 곁에 있나요? 사실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한 공동체는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여전히 죄의 세력이 우리를 삼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것이 공동체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명을 위해 씨름하는 공동체 안에서 충만함을 이루십니다.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의 상황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하늘공동체를 벗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라 고아였고 이방인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해서 그래서 내가 안전하다고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직시하다보면 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보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내 안에서 있어야할 것을 찾고 채워야 합니다. 99마리의 양, 9개의 동전, 그리고 큰 아들이 현재 여기에 모인 우리의 입장일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도 언제든지 큰 아들의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큰 아들의 잘 못된 태도를 직시하고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있어야할 것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떠난 사람들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그들을 다시 데려오기가 힘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는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논리와 자기주장이 선명하고 확실합니다만 더러 화합과 배려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가 혹시 진보진영의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복음이 우리의 성품을 통해서 표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 성품은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형성된 성령의 열매라고 믿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은 혹시 성령의 열매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잃어버린 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 밖 너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공동체를 벗어나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기가 있어야할 곳을 넘어선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신분과 특권을 벗어나 우리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누가복은 15장의 세 번째 이야기 속에서 탕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직접 탕자가 되어 그들과 한 몸이 된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기면서 모든 탕자들의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게토화되는 것을 넘어서야합니다. 자칫 이번 네트워크계획이 또 하나의 나들목교회를 확장하려고 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것입니다. 지역 속에서 하나님나라복음을 드러내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처음 나들목교회가 견지한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운 대로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는 세상 속에서 역할을 감당해야합니다.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울고, 외로운 자들과 함께 지내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 우리의 재산을 나누는 것입니다. 한 지역교회의 성장과 확장에 기뻐하기 보다는 세상의 공의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해야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협회 안에서 미수습자들의 격분과 두려움 그로 인해 다소 미성숙한 행동이 보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 가장 아픈 지체들입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지 때문입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판단하거나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세상은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있지만 죄로 물든 세상이 우리에게 참 많은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쉽게 판단하기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참 많습니다. 판단하기보다는 우리 공동체가 그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가지를 펼쳐주는 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임하신 주님의 충만함으로 참된 안식과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완전함과 충만함이 우리 안에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웃까지 펼쳐지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라고 믿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