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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내가 읽은 책

by Sungmin Kim 2017. 7. 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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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관해서




책 제목이 '지금은 없는 이야기'이다. 처음 제목만을 접하고서 질문이 들었다. 지금은 없다면 언제가 그 이야기가 생긴다는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작가도 그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책에서 묘사한 이야기들이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 다만 이 이야기들 중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많은 우화들처럼 작가 미상의 이야기로 세상에 떠돌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쓰이기를, 그리하여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글의 형식에 관해서

 

이 책은 만화형식의 우화이다. 우화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풍자하여 현실 속에 일어날 수 없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꾸민 이야기이다. 그 시대상황을 읽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만화로 표현해서 우선 접근하기 쉽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송곳이라는 웹툰 만화를 썼던 최규석 작가이다. 송곳은 JTBC드라마에서도 상영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로 한다. 송곳은 노동환경의 부조리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아주 직설적으로 다루었다. 물론 송곳이 이 책보다 3년 후에 쓰였지만 이런 류의 만화를 많이 그려본 탓에 이 책의 내용도 우리의 일상에서 겪는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럼 아직은 없지만 앞으로 있을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이 우화속의 주인공들을 꺼내서 현실의 모순된 삶을 설명할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한다. 20편의 모든 이야기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다 언급하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나에게 아주 깊게 와 닿았던 몇몇 이야기만 꺼낸다.

 

 

 

1. 갑옷도시

 

첫 번째 우화이다. 쇠로 지어진 도시가 있다. 모두 사람들이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산다. 그들의 존재가치는 갑옷에 달려있다. 언제나 갑옷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좀 더 멋진 갑옷을 얻기 위해 일을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갑옷을 입지 않고 항상 우산을 들고 있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언젠가 비가 올 것이라고 외쳤다. 마침내 비가 오고 갑옷이 녹슬어 움직일 수 없자 사람들이 그를 믿기 시작했다. 노인은 녹슨 갑옷 속의 사람들을 열심히 구해냈다. 갑옷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마침내 그 노인에게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의 지혜를 배우려고 다가왔다. 그 순간 녹슬지 않는 새로운 갑옷을 만들었다는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갑옷 상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이 이야기는 내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내가 현실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놓지 않는 그것, 그것이 나를 노예로 만들기도 한다. 위기가 닥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들어 그곳에서 헤어 나와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그곳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미 나는 무엇인가에 노예가 되어 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2. 늑대와 염소

 

늑대는 염소를 사냥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염소가 마냥 도망가거나 잡히지 않고 그들의 뿔로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염소 지도자 한 마리를 없앤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저항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늑대들은 늙은 잿빛 늑대의 조언을 구했다. 그의 말대로 염소 무리들 중에 수가 적은 흰 염소 무리들만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함께 저항했던 염소들 중에서 검은 염소들이 하나 둘씩 빠지거나 피하는 것이었다. 흰 염소들은 자신들만 잡아먹히자 검은 염소들에게 항의했다. 왜 도와주지 않냐고. 그러자 가장 뒷줄에 빠져있던 검은 염소가 황당하다는 듯이, 그동안 자신들은 목숨 걸고 흰염소를 도왔다고 말하면서 되레 양심이 없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 아닌가! 자신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흰 염소가 자립을 못하다고까지 몰아붙였다. 황당한 흰염소들은 어쩔 수 없이 깊은 골짜기로 숨겨나 자신의 몸에 검댕칠을 하고 숨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도 못할 일은 검은 염소들이 늑대들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다. 결국 흰 염소가 모두 잡혀 먹혔다. 다음 타깃은 누구였겠는가? 당연 검은 염소다. 늑대들은 필사적으로 검은 염소들이 저항 할 것을 두려워해서 그 늙은 늑대에게 또 자문을 구한다. 그는 이제 아무 염소나 내키는 대로 잡아도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마리씩 잡아먹힐 때마다 그 이유를 생각하느라 저항할 겨를이 없고 타당한 이유를 발견한 염소를 잡아먹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다. 그것을 잘 아는 상대는 우리가 강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를 분열시키는 전략을 선택한다. 촛불혁명으로 이루어낸 탄핵과 대통령선출은 아주 기쁘고 뿌듯하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세력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분열시킬 방법들을 찾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덫에 자주 걸렸다. 자신의 도덕적 완결성에 스스로 '자뻑'하게 된다. 같은 편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싸워야할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한다. 또 하나의 내부의 적은 우리 자신이다. 양육강식의 사회를 숙명처럼 받아드리게 되면 강자들의 세상을 묵인하는 꼴이다. 내 자신의 잘못된 성찰이 빚어낸 결과이다. 그렇다면 옳은 성찰은 어떤 것인가?

 

 

3. 냄비 속에 개구리

 

큰 냄비 속에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그 냄비는 천천히 가열되고 있었다. 그 중에 민감한 녀석이 눈치를 살피며 물속이 덥다고 말하자 유난을 떤다고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점점 더워지는 것을 느낀 다른 개구리들도 덥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만만한 개구리가 대 낯 더위보다 덜하다고 일축해 버린다. 부끄럽기까지 했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나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예민한 개구리가 마침내 그곳을 떠나야한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자신만만할 개구리는 오히려 더 의기양양하게 반박했다. 이곳이 유일한 세계이며 다른 곳이 있다손 치더라도 문제없는 곳은 없고, 그곳으로 가더라도 또 불평할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겪은 고통으로 인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감사와 겸손을 알게 되었다면서 자기성찰까지 하는 태도를 보이자 다른 개구리들이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었던 예민한 개구리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현실이 갑작스런 위기를 만나거나 지속적인 고통 속에 있을 때, 왜 그런지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내 자신의 잘못한 습관이나 악한 행동으로 인해 고통스런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습관을 고치면 되고 선하게 살면 된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사회구조와 제도의 문제라면 다르다. 사회를 바꾸든지 아니면 그곳을 벗어나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힘든 이유는 간혹 잘못된 구조와 악한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사회는 그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물이 가열되고 있는 냄비라는 사회구조이다. 어떤 개구리들도 그곳에서 살면 안 되듯이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살아서는 안 될 사회구조가 있다.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의 문제이다.

 

맺는 말

 

이 우화집을 읽으면서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특히 냄비 속 개구리는 304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야속한 세월호의 안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구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도 문제지만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악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월호 속에 지금 살고 있으며 가라앉고 있는 배의 어느 한 구석에 갇혀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의 창문을 깨고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자꾸 사회의 문제를 내 자신의 결핍과 자기개발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한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기에 개인의 능력이 선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개발과 같은 류의 책들이 많이 팔려나가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두 가지는 분별력이고 공동체성이라고 생각된다.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노력 이전에 선과 악의 분별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는 그 기준이 바로 사회의 공동체성이다. 각 개인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사회의 유익은 그에 속한 성원들의 개별적인 유익으로 돌아가게 되는 선순환적인 구조가 형성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사회구조가 선한가?, 그 사회의 성원으로서 나는 선하게 행동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의 이익에 맹목적인 희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공동체성이 형성되어야한다. 공동체는 다양한 한 개인이 존중되면서도 공동의 선한 목표를 위해 통합되는 과정이 있는 유기적인 관계이다. 그 과정의 선함이 정의라고 생각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한 개인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에 꼭 두 마리이상, 또는 두 종류의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며 사회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는 선한가? 사회는 그 선을 충분히 담을 만큼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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