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린도교회는 언제 어떻게 개척이 되었는가?
1)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까지
바울이 고린도에 갔던 시기는 2차 전도여행 기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주로 1차 전도여행 지역을 돌아보고 그들을 격려할 계획이었다.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신도들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살펴봅시다.”(행15:36)
하지만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동행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다투는 바람에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지고 실라와 함께 2차 여행을 떠난다. 바울 일행은 안디옥을 출발하여 길리기아 다소에서 갑바도기아의 더베를 거처 1차 전도여행의 최종 종착지인 루스드라에 이른다. 루스드라에 디모데가 합류하는데 그는 그 이후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아주 중요한 동역자가 된다.
1차 전도여행지를 돌아본 바울일행은 이제 에베소로 갈 계획을 한다. 에베소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아주 유명한 로마의 아시아 속주의 수도였다. 하지만 성령의 이끌림으로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유럽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행16:6)
그들은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드로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고 다시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건너간다. 아마도 이곳에서 누가가 합류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들은 빌리보를 거처 데살로니가로, 베뢰아로 그리고 그리스 국가의 핵심도시인 아덴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덴에서 전도사역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고린도로 향하게 된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1년 6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가 아마도 AD 50-52년 사이일 것이라고 추축할 수 있다.
2) 고린도교회 개척이야기(행18:1-18)
바울의 교회개척 전략은 주로 도시에 형성된 유대공동체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 공동체의 중심은 회당이다. 안식일에 예배에 참여하여 회당장이 말씀을 읽고 나면 자신이 그 말씀을 풀이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보통 유대인들은 바울의 가르침들을 받아드리지 않았지만, 주변에 앉아서 듣고 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회당 밖에서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자 모였다. “회당 바로 옆 교회!” 고린도 교회는 이런 방식으로 탄생되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옆에서 그를 도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중에 디도 유스도가 있었다. 바울은 그를 만나 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곳이 고린도교회가 되었다. 또한 바울은 회당을 통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게 된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전문직업인이었다. 그들은 AD 49년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에 의해 로마에서 추방당해 고린도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자비량으로 고린도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러나 유대사람 한 패가 몰려와 바울을 소송하자 그 당시 아가야지역 총독이었던 갈리오가 종교적인 문제로 돌리고 해결된 듯 했으나 그들이 행패(회당장 소스데네를 때림)에 못 이겨 결국 고린도를 떠나게 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떠나 겐그리아를 거쳐 에베소에서 헤어진다.
2. 고린도 전후서
1) 기록한 지역
고린도를 떠난 이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에베소로 갔고 그곳에서 고린도 전서를 썼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고린도후서를 썼다.
2) 기록한 사람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소스데네의 도움을 받아 기록하였다(고전1:1). 소스데네는 사도행전18장 17절에 언급한 회당장으로 추측된다. 고린도후서도 마찬가지로 바울이 디모데의 도움을 받아 기록하였다(고후1:1).
3) 기록한 연대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고전16:8, 행20:31)에 고린도전서가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울은 그 이후 2번 더 고린도를 방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55년이나 56년쯤 두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고후13:2), 56년이나 57년에 세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였으며 석 달 동안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후13:1, 행20:3). 바울은 그 두 번째 방문을 마치고 난 이후 세 번째 방문을 준비하면서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고린도후서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후서강해>, 폴 바네트, BTS시리즈)
*사진출처 http://blog.daum.net/ansan3/1338
3. 고린도 전후서의 특징
1) 고린도전서의 특징
고린도교회는 그 주변문화로부터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사안이 윤리적인 타락과 성적인 무질서였으며 그로 인해 나쁜 평판을 얻고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또한 성도들 간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었으며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교회 내에서 풀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호소하기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결혼과 독신에 대한 혼돈, 성만찬에 대한 오용과 그로 인한 분열 그리고 우상숭배와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 등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통로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접한 바울은 사안들 하나 하나 지적하며, 때로는 칭찬의 어조로 때로는 강경한 질책의 어조로 그들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들을 바로 잡아 나갔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어 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바울 자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바울이 경험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을 통해서 직접 경험하고 성령을 통해서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한다면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바로 잡혀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죽음을 이기시고 다스리시며 결국에는 모든 죽음의 세계를 심판하실 하나님나라의 왕이기 때문이다(고전15:25). 그러므로 고린도전서를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내면과 삶에 실제하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현실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묵상하며 그를 붙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면 좋을 것 같다.
2) 고린도후서의 특징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는 여러 문제로 바울에 대해서 오해와 갈등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멀어진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전서를 쓰고 난 이후 서신서를 쓰기 전에 “눈물의 편지(고후2:4)”라고 하는 서신을 통해서 고린도 성도들과 오해와 불신에서 비롯된 갈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후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자신이 사도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변호하고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풍부한 감정으로 변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요, 제자로서 삶이 어떤 것이며 그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나가면 좋겠다.
4. 고린도 지역
1) 도시의 배경
BC 8세기에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국가로 성장하여 한때는 고린도 인구가 자유인이 25만, 노예가 40만이었다고 한다(현재는 3만 정도).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 주전 146년경에 고린도를 중심으로 아가야동맹을 맺고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가 고린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100년 후 이 도시는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BC44년에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었다. 27년에는 아가야지역(그리스 남쪽과 펠로폰네스 포함)의 행정수도가 되었다.
고린도 아고라(Agora: 광장)에는 당시의 화려하였던 생활의 모습과 문란한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유적들이 발굴된다. 여러 신상과 수많은 기둥들이 있고 바닥에는 잘 다듬어진 돌이 깔려 있다. 이 도로(직가)는 바로로 연결된다. 그 외에도 신전들과 극장, 상점과 목욕탕 그리고 바울이 재판을 받았던(행18:12-17) 곳도 발견된다. 뒤편에 보이는 산 주위에는 성채가 있고 그 안에는 아크로폴리스가 형성되어있다. 그곳에 성적 타락의 원상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다.
아프로디테 여신
2) 도시의 문화
고린도에는 적어도 12개의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중에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에는 종교적인 매음이 행해졌고 그로인해 1000명의 선발된 창녀들이 신전에서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극심한 성적인 타락과 문란한 사회가 되었다. ‘고린도인과 같이 행하다’라는 격언은 ‘성적으로 아주 문란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되었다.
반면에 이 도시는 부유하여 철학과 수사학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학교들이 번성하였다. 그로인해 지적인 자부심이 있었다. ‘고린도의 말’이는 격언적인 표현은 ‘매우 설득력 있고 달콤하게 수사학적으로 말을 한다’는 뜻이 있었다.
로마인들, 헬라인들,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섞여서 종교적인 혼합주의가 성행하고 종교적인 의식이 아주 타락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유대인 공동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2년마다 고린도 지역 인근에서 이스트미아 제전을 개최했다. 이 경기는 올림피아 경기와 더불어 그리스 4대 경기에 속하며 제우스의 형제이며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을 기념하여 열렸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제전 때 공급할 천막을 만들었다.
<고린도전후서의 저작배경과 관련된 바울의 행적> (옥스포드 주석, 고린도후서)
•고린도 1차 방문(A.D 51년) : A.D. 49-52년 사이의 제2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를 처음 방문하여 1년 6개월간 체류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창립했다(행18 :1-18). 이곳에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기록한다.
•제 3차전도 여행 개시(A.D. 53년) : 제3차전도 여행은 A.D. 53년에 시작되어 58년까지 대략 5년간 계속되었으며 그 중심 사역지는 대략 2년 6개월 이상을 체류했던 에베소였다
•제1차 사도서신 발송(A.D. 54년) :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 이 서신(고전 5:9) 에서 바울은 에베소 → 고린도 → 마게도냐 → 고린도 → 예루살렘의 전도여행 계획을 밝혔다(고후 1:15, 16).
•디모데 파송 (A.D. 55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기 직전에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고린도에 파송하였다(행 19:22; 고전 4:17; 16:10-11)
고린도전서 발송(A.D. 55년) :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로 파송한 직후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여 발송하였다. 아마도 이 고린도전서는 해로로 직송됨으로써 마게도냐를 우회하여 육로로 간 디모데보다 먼저 도착하였을 것이다. 이 편지 에 서 바울은 에 베소 → 마게도냐 → 고린도 → 예루살렘의 변경된 여행 계획을 밝혔다(고전 16:5-9)
• 고린도 2차 방문(A.D. 55년) :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돌아온 디모데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급격히 악 화되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바울은 당장은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으려 했던 계획을 변경하여 급거 에베소에서 직접 고린도를 방문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곧 다시 에베소로 귀환해야만 하였다. 이것이 소위 ‘근심의 방문’ 이었다(고후 2:1-4).
'눈물의 펀지’ 발송(A.D. 55년) : 고린도 교회의 온전한 회개와 개혁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다시 에베소로 돌 | 아와야 했던 바울은 실로 ‘눈물의 편지’ 라 불릴 정도의 심각하고도 애절한 편지를 써서 디도 편으로 고린도에 보냈다(고후 2:4). 이 편지는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마게도냐여행(A.D. 56년): 바울은 ‘눈물의 펀지’ 발송 후 에베소에서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에 이르렀다(고후 2:12.13). 이 때 바울은 드로아에 서 디도와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마게도냐에 이르러서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디도로부터 대부분의 고린도 교우는 회개하였으나 일부 교우가 거짓 사도들의 선동으로 이제는 근본적으로 바울 사도의 사도권 자체를 부인하는 불의의 사태가 발발하였음을 보고받았다(고후 7:5-16).
고린도후서 발송(A.D. 56년) : 디도의 보고와 관련한 고린도 교회의 새로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주로 자신의 사도권 변호를 주내용으로 하는 고린도후서를 마게도냐에서 기록하여 디도 편으로 발송하였다(고후 8:16-17, 행19:23-20:1).
•고린도 3차 방문(A.D. 57년): 디도가 돌아와 위로를 전함(고후7:6-7).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판단한 바울은 고린도를 세 번째로 방문한다(행 20:1-2). 이때 대략 3개월간 체류하는 중에 아직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못한 로마 교회를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 발송하였다(롬 16:23).
•예루살렘 귀환(A.D. 58년): 고린도에서 겨울을 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 밝힌 여행 계획에 따라 그곳에서 배를 타고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그를 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가 있어서 여행 계획을 또다시 변경, 고린도 → 빌립보 → 드로아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다(행20:3)
*참고서적
<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제자원
<BST 시리즈 고린도전서>, 데이비드 프라이어; <고린도후서>, 폴 바네트; IVP
<역사드라마로 읽는 성경>, 류모세,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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