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를 시작한 지가 1년이 되었다. 그 전 대체목자까지 합치면 1년 6개월이다.
가교가 분가되어 정식가교의 목자로 섬기면서 별 어려움이 없이 지내왔다. 하지만 최근에 한 자매가 가교를 나오지 않고 있다. 나와 내 아내가 추측한 것으로는 우리 가교에서 공동체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교를 시작하면서 아내는 심혈을 기울여 매주 마다 13주 과정으로 풍성한 삶의 기초 양육을 하면서 돌보았다. 또한 그 자매가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부모의 갈등과 그로 인한 가족들과의 서먹함들이 있었고, 직장에서는 두 회사의 병합문제로 인한 혼란스러움과 한 고객의 지나친 요구로 인해서 지쳐있을 뿐만 아니라 수치심을 느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 그녀에게는 과연 공동체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들목교회에서 그렇게 강조해온 공동체와 그것을 이끌어 가는 목자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의 고통에 공동체를 통해서 전혀 이해받지 못한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녀가 느끼는 절망은 상당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공동체에 관한 서운함이 목자인 나와 아내에게 있는지, 아니면 공동체 가족들에게 있는지, 또는 나들목연합교회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본인은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 애둘러 이야기 하거나 해석이 필요할 정도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주변의 환경이 상당한 영향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대처하는 방법은,
우선적으로, 내 자신의 속 마음은 어떤 것인지 점검해 보는 것이다.
목양에 관한 한 자신감이 높았던 나로서는 목양의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속상하다. 오히려 그녀의 회복을 위해 마음을 더 쏟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전자가 더 깊이 내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면 잘 못된 것이다. 이로 인해 권위의 폭력성이 나올 수 있다. 목회자는 성도와 관계에서 권위가 생기기 마련이다. 목회자가 성도와 목양(상담포함)하는 과정에서 통제하고 싶어한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고, 성경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람으로서 성경에 의해서 가르치고 있다고 여기는 목회자는 성도가 자신의 목양의 통제 밖에 있다고 느낄 때, 언짢아진다.
삶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성경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정황을 다 담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 것을 받아드리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이해는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성경을 좀 더 알고 있다고 해서 가족들의 모든 삶의 세세한 부분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권위의 폭력성... 주의해야할 목회자들의 죄다.
두 번째는,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회복시켜야하는 사명감에 너무 불타서 집착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아야 한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쉽게 해결하기도 한다. 선교훈련 받으면서 생각나는 분이 있다. 나와 아내는 그 선교사님의 내면의 안정을 돕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마치 블랙홀과 같았다. 애를 쓰면 쓸 수로 우리는 탈진되어 갔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자. 가족들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한 사람의 내면을 명확하게 살피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목회자로서 나는 가족들이 자신의 내면을 하나님께 오픈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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