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앞에 무너지는 다윗 여인 앞에 무너지는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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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앞에 무너지는 다윗

설교/매일묵상

by Sungmin Kim 2016. 8. 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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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1:1-13 / 여인 앞에 무너지는 다윗

2016.7.29.


1 - 5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다.

6 - 9 우리아를 불러드리다.

10 13 충성스런 우리아와 간사스런 다윗

 

1. 내용주해

1)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다.

- 고대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 봄이 되면 왕들은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간다. 그 동안 부하들과 함께 싸웠던 다윗은 이번에는 나가지 않고 왕궁에서 머물렀다. 다윗의 군사들은 지금 암몬과 전쟁하고 있는 중이었다. 겨울과 우기가 끝나고 봄이 되자 요압과 그의 부하들이 암몬을 치러 떠났다. 첫 번째 전투(10)에서 요압이 승리하였고 이번 두 번째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 다윗은 부하들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낮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나 한가로이 왕궁지붕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 여인은 아름다웠다고 묘사하고 있다. 다윗의 눈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아름다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월경이 끝나고 부정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결의식으로 몸을 씻고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그를 왕궁으로 불러드려 동침하였고 곧 그 여인은 임신하게 되었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간통을 저지르기까지 아주 주도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밧세바는 아주 수동적이다.

- 그 여인은 밧세바이다.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이다. 모두 다윗의 용사 37인에 속한 자들이다(삼하23:34,39). 우리아는 비록 헷 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이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보아서 부모들이 이스라엘에 이주하여 그곳에 태어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으로 추측된다.

 

2)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드리다.

- 다윗의 치밀함은 여기에서 더 자세히 드러난다. 밧세바를 통해서 임신했다는 통보를 받자 숨기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전쟁 중인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드린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서 아이가 임신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8절에 보면, 다윗이 전쟁터에서 돌아온 우리아에게 싸움터의 형편을 묻고는 가서 목욕하고(또는 발을 씻고)” 쉬라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하사품을 전달한다. 아주 적극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우리아는 부하들(9절에 상전의 종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과 왕궁 문간에서 함께 잤다.

 

3) 충성스런 우리아와 간사스런 다윗

- 다윗이 우리야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우리아는 전쟁 중에 있는 군사들은 정결해야하고 또한 자신의 상관과 군사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편하게 집에서 쉬면서 아내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치밀한 계획을 꾸민다. 하루 더 머물게 하고 부하를 치하할 요량으로 술자리에 초대한다. 하지만 그의 속셈은 그를 취하게 한 후 아내에게 보낼 의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잠을 잤다.

우리아는 일관되게 충성스런 신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어떻게든 간음죄를 숨겨보려고 애를 쓰는 간사스런 다윗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2. 적용

1) 사명보다는 자리가 주는 안전감 속에 찾아오는 유혹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방인과 같은 왕정을 허락한 이유는 그들과 다른 사명을 전제로 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다. 그러므로 왕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키며 백성들에게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왕은 싸움터에 나가 직접 적들을 방어함으로서 백성들을 보호할 역할에서 물러나 통치자로서 다른 역할을 감당해야했다. 이런 것은 또 다른 책임에 대한 도전이지만 물리적 여유로움과 안전감이 주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정치적인 정략을 세우고 외교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시간적인 여유와 권력사용에 대한 편이성이 긴장을 늦추게 만든다. 왕궁에서도 전쟁터와 같은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쉽게 유혹이 파고든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유혹의 큰 마당이다.

-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사명이 유혹과 동시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얼마든지 충성스런 왕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간음과 같은 죄가 동시에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간음하는 죄를 지은 것이 충성스런 왕의 의미와 대조적이라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목회를 하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분이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죽게 하였고 11개월 동안 방치한 사건이 있었다.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해외에서 많은 이들이 소그룹 활동을 배웠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은 여자와 돈 문제로 철장신세에 처하게 되었다. 요즘은 대형 청소년 집회를 이끌던 대표가 10년 전에 어린 소년을 꾀어서 간음을 저지른 사건이 불거지고 있다. 그 이후 여전히 그는 집회를 이끌며 하나님나라와 그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설교를 했다.


2) 대의 보다는 일상에서 작은 일

-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에서 소소한 일을 통해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 대의를 위해 우리가 품고 있는 꿈과 사명이 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 바쳐 헌신할 것처럼 달려들지만 정작 작은 일에서 넘어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린 나이에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전쟁터에서 수고하는 자신의 부하의 아내를 보고 유혹에 못이겨 넘어지고 말았다. 오히려 가련한 여인을 보호하기 보다는 늑대처럼 탈취했고 자신의 부하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그렇게 용감하고 충성스런 용사의 기백과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 선교에 헌신된 사람들이 마치 그 나라를 자신의 가슴에 품고 당장이라고 큰 변화를 일으킬 것처럼 감격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참 좋은 열망이다. 하지만 내 자신을 성찰하고 바로 가까이 있는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대의를 품었다고 큰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에 의인이 될 때, 하나님은 큰일을 맡기신다. 큰일을 맡겼다고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니다. 그 때부터 시작이다.

 

 

3) 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 한 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그를 덮기 위해 계속 죄를 짓게 되는 것 같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윗이 목욕하는 여인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 마음을 접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음의 음욕이 생겼더라도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충성스런 부하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을까. 그 만큼 음욕은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것일까. 하기야, 태초의 인간들도 생명나무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하나님이 금지한 나무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 짓을 했을 것이다.

- 이럴 경우 어디에서 꼬리를 잘라야하나? 결국 다윗은 많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후 그것도 자신 스스로 죄를 깨닫기 보다는 급기에 하나님이 직접 나서야 멈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는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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