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1-20 / 다윗의 경솔함
2016.08.05. 금
1 - 3 요압이 드고아 여인에게 그의 계략을 말하다.
4 - 11 여인이 다윗에게 연극하다.
12 – 17 여인이 다윗에게 충고하다.
18 – 20 다윗이 요압의 계략을 알아채다.
1. 내용주해
1) 요압이 드고아 여인에게 그의 계략을 말하다.
- 요압은 충성스런 부하임에는 확실한 것 같다. 왜냐하면 다윗 왕의 마음을 알아채고 대책까지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혜로운 여인을 불렀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초기에는 성읍에 ‘지혜로운 여인들’의 집단이 거주했다고 한다. 잠언에서는 지혜를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고 선지자(1:22-33)나 여주인(9:1-6)이나 아내(31:26)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역할은 어머니들이였다(잠1:8;31:1-9). 요압은 드고아에 살고 있는 지혜로운 여인을 불러 온다. 그 ‘지혜로운 여인’이 사회적 위치가 있어서인지 자신의 계략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그녀에게 정중하게 부탁한다. 계략의 요지는 다윗의 마음을 돌이켜서 도망간 압살롬을 데려오는 것이다. 다윗은 압살롭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요압은 이런 다윗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2) 여인이 다윗에게 연극하다.
- 요압이 일러 준 대로 여인은 과부로 변장을 한다. 그는 대담하게 가련한 과부로 행세하며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싸워서 한 아들을 잃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한 아들을 잃어서 슬픔에 잠겨있는데 집안사람들이 나머지 아들마저도 살인자로 처단해야한다고 내 놓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인은 그들이 피의 보수자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고 자신의 “불씨”인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다윗은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하며 그의 간청을 들어준다. 사실 그 여인의 두 아들은 압살롭과 암논을 빗대어 묘사하고 있고 다윗에게 충고한 밑밥을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여인이 다윗에게 충고하다.
- 결국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의 모든 설정은 다윗과 그의 아들들에 관한 것이었다. 드고아여인은 다윗에게 아들에 관한한 그가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그 여인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피의 보수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다윗 자신은 압살롬을 용서하지 못하냐고 지적한다. 그리고 더불어서 사람이 죽으면 다시 담을 수 없는 물과 같이 돌이킬 수 없음으로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여러 방책을 세워 사람을 살려 주신다. 비록 내어 쫓긴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 드고아 여인의 충고는 참 지혜롭다. 그러나 그 충고는 잘 못되었다. 비록 하나님의 성품을 인용하지만 진리에 기초를 두지 않았고 우선적으로 그가 이루고자하는 목적이 있었다. 다윗의 편에서 그가 선한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보다는 그 목적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율법에 준거해서 그의 백성들이 그의 뜻을 지키고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살인한 사람에 대해서는 율법이 명시한대로 행해야한다. 그러나 율법의 정신에 따라 모든 죄를 밝히고 용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의이다. 드고아 여인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 여인의 의도는 다윗이 압살롬을 받아드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은 단지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의 고민을 덜어주려고 한 정치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압살롬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에 상응하여 아버지 다윗은 용서를 베푸는 그런 과정이 없다. 화해, 진정한 샬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 다윗이 요압의 계략을 알아채다.
- 다윗은 드고아 여인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계략이 있었음을 눈치 챘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요압에 의해서 꾸며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고아 여인은 다윗에 대해서 하나님의 천사처럼 슬기롭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아실 것이라는 말로 칭송하고 있지만 이 말 또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다윗은 지혜롭지 못하게 처신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인의 말에 넘어간 꼴이 되었다. 다윗에게 있어서 압살롬은 가족과 왕위를 든든하게 받쳐줄 아들이 아니라 왕조에 위협을 줄 “불씨”가 되었다.
2. 적용
1) 진정한 충성
- 요압은 다윗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충신이다. 이런 사람을 부하로 둔 왕이라면 행복할 법도 하다. 하지만 요압의 충정은 잘 못되었거나 최소한 반쪽짜리이다. 다윗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그래서 그가 정말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했다. 권력자의 주변에는 그 권력이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마음을 헤아리는 자들이 많다. 그의 행동은 그 권력자의 이익보다는 그 권력에 의지해서 자신의 입신양명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그 헤아림이 인간의 죄의 본성에 불쏘시게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권력자가 어떤 문제에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어떤 길이 자신에게 유익한 지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 걸맞은 행동과 말은 권력자를 안심시키고 부추긴다. 이런 사람들을 간신이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충신이라면 유익한 길보다는 최선의 길을 제시하고 충언해야한다. 때론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고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에게 충신인가? 아니면 간신인가?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의 충성도를 평가하는 리트머스이다. 그들을 이용하여 나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면 간신이고, 내가 그들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된다면 충신이 될 것이다.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
2) 진정한 지혜
- 드고아의 여인은 정말 탁월하게 연기했다. 그의 지적은 틀리지 않는다. 마치 나단이 다윗의 악행을 지적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로 꾸며서 설명했다. 하지만 나단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 여인은 요압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무리 그럴 듯 해보여도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온다. 인간은 살아갈수록 또는, 많이 배우고 알수록 지혜가 쌓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일반은총 속에서 발견된 지혜일뿐이다. 한계가 있고 희미하다. 그러기에 그것이 완전한 지혜처럼 둔갑하면 위험하다. 우리는 그것을 분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주 실수를 저지른다. 다윗에게 아쉬운 부분은 여기에 있다. 드고아의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것이 많았다. 자신을 돌아보며, 잘 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압살롬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조금 깊이 생각하면 결국 딸 다말이 그런 수모와 아픔을 겪고 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다윗의 잘못이 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압살롬이 살인을 하고 도망갔을 때도 그는 그냥 방치하다시피 했다. 아버지로서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시행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불러왔을 뿐,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다윗이 예전처럼 하나님께 뜻을 묻고 자신의 행동을 살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한다. 그것이 진정 지혜를 얻는 방법이다.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 때론 드고아의 여인처럼 이웃과 환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자신의 내면과 삶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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