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24-43 / 다윗이 되돌아오면서 겪은 일
2016.08.19. 금
24 – 30 므비보셋을 다윗을 마중 나오다.
31 – 39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호의를 베풀다.
40 – 43 다윗이 복귀하는 일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다투다.
1. 내용주해
1) 므비보셋을 다윗을 마중 나오다.
다윗이 돌아왔을 때, 므비보셋은 요단까지 마중 나온다. 그는 다윗이 없는 동안 애도하는 표시로 자신의 몸을 가꾸지 않았다. 발톱과 수염을 깍지 않았고 옷도 빨지 않았다. 하지만 다윗은 만나자마자 그에게 왜 자신과 함께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다윗에게 한 말을 근거로 묻는 것이다. 시바는 다윗이 피신하고 있을 때,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의 환심을 산다. 그리고 다윗이 므비보셋의 상황에 관해 묻자, 할아버지 사울의 왕위를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윗은 그런 시바에게 므비보셋이 소유한 모든 재산을 주었다.
다윗이 므비보셋의 해명을 듣고 오해를 풀었지만 완전하게 신뢰를 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시바를 벌하였을 텐데, 오히려 시바와 재산을 나눠가지라고 한다. 그러자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신보다는 시바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주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므비보셋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윗의 손에 맡긴 것이다. 이제는 다윗과 요나단의 신의가 흔들리게 되었고 그들의 약속이 더 이상 지켜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사울 집안의 종인 시바의 반역을 통해서 약속도 그 약속에 근거한 은혜도 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2)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호의를 베풀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마하나임에 있을 때, 필요한 물품을 제공했다. 침대까지 제공한 것을 보면 그가 다윗을 존귀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을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마중 나온 그에게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늙었다는 이유(80세)로 사양한다. 왕궁에서 부귀영화보다는 고향에 살면서 자신의 부모 묘에 묻히는 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신에 자신의 아들 김함을 부탁한다. 다윗은 나중에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자손들을 후대하라는 유언까지 남긴다. 이렇듯 다윗은 피난 시절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이들에게 철저하게 보상한다.
3) 다윗이 복귀하는 일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다투다.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함께 다윗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사람들에게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토로했다. 유다 지파사람들이 왕과 왕의 가족들을 빼돌려 요단강 너머로 도망가게 했다고 불평한 것이다. 그에 맞서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왕과 가장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에 다윗을 모실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다윗은 19:12에서 “그들은 나의 친족이요 나의 골육지친인데 어찌하여 왕을 다시 모셔 오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먼저 다윗이 유다사람들에게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모른 듯하다.
이스라엘 사람은 또 주장하기를 자신들이 열배의 권한을 더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10지파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대신 유다는 시므온과 함께 두 지파로 구성되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유다가 독단적으로 행사한 것은 자신들을 무시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이들의 싸움은 먼 훗날 남과 북이 갈라지는 시초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12파가 하나로 뭉쳐질 때 온전한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나라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지파분쟁은 현재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분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에 속한 지파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2. 적용
1) 오해가 있을 때
가장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사실 대부분, 내가 감정이 예민하고 격해 있기 때문에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심각하게 판단하게 된다. 다윗이 시바가 행동하고 말한 일을 가지고 단지 종의 신분이었던 그를 신뢰하였고, 그가 모함한 므비보셋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갖게 되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우정을 쌓은 친구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그의 자식들을 잘 보살펴주겠다고 맹세까지 했었다. 더군다나 므비보셋은 다리를 저는 무기력한 사람이었다. 시바의 말에 의하면 므비보셋이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니고 단지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어 사울의 왕권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말이 다윗에게는 무척이나 섭섭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대우했는데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있는가? 반면에 시바는 다윗이 피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듬뿍 실어왔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중에 돌아와서 므비보셋의 말을 듣고 오해를 풀지만 여전히 다윗의 마음은 예전 같지가 않아 보인다. 시바에게 다 준다고 했던 재산을 다시 되돌려 주었지만 시바와 반반씩 나누게 했다. 모함했던 시바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재산을 준 것도 어쩌면 므비보셋의 존재에 대한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므비보셋은 요나난이 베푼 은혜의 기억이지만 사울의 폭력을 생각나게 하는 아픈 기억이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집안을 언급하자 다윗은 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냐며 몹시 불편해 한다. 그리고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그에게 자비를 베푼다. 그리고 시바에게도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행동을 감안하여 자비를 베푼다. 모든 사람이 함께 이익을 얻는다.
오해가 생길 때, 우리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왜곡되고 상한 감정을 잘 다스려야한다. 상한 감정은 하루아침에 아물지 않는다.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볼 때, 사울과 요나단의 얼굴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풀게 된 것은 요나단 때문이다. 그에게 은혜를 빚졌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오해가 생길 때, 두 마음이 겹칠 수 있다. 분노와 자비! 주님의 은혜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면 우리의 상한 감정으로부터 오는 분노를 녹일 수 있을 것이다.
2) 호의를 베푼 사람들에게
다윗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어려운 시절에도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함께 고난을 겪는 사람이 있고, 주변에서 물질로 마음으로 돕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기 때문에 신실한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나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보상해 주었다. 바르실래에게 호의를 베푼 모습을 보면 참 감동이다. 80이 넘은 노인을 왕궁으로 데려가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다윗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단지 물질로 보상하면 그만일 것을. 바르실래가 극구 사양하자 대신에 그가 부탁한 아들을 데리고 간다. 더군다나 솔로몬에게까지 유언을 남기고 그의 자손들을 보살필 것을 당부한다.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은혜를 되갚으려면 이렇게 확실하게 보상해야하지 않겠나. 은혜를 저버린 세대에 그저 시늉만이라도 한 것으로 고마워할 일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늉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은혜는 되갚을 길이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대신 주님은 주님의 마음 두신 곳에 찾아가 주님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들에게 되갚으라고 말한다. 시늉내면서 했다고 사진 찍고 생색내고 자신을 과시하지 말고 오른 손이 한 것을 왼 손이 모르게 조용히, 그러나 철저히 주님으로 받은 만큼 은혜를 되갚자.
3) 자신의 일로 싸울 때
다윗은 난처했을 것이다. 복귀하면 이제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게 될 텐데, 복귀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10지파와 유다 2지파가 분열되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다윗이 자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귀한 준비를 유다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유다는 나의 친족이요 나의 골육지친이라고 말한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특별하게 마음을 두고 있는 지파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윗 자신이 유다 지파에 속했다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인지 두 그룹이 싸우고 있을 때, 다윗이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런 연유여서인지 불량배 세바가 불만이 폭발직전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킨다. 예견되는 결과일 수 있다.
내가 다윗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상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는지 그들의 역사를 되짚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파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된 한 민족이요 백성이며 나라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행하실 위대한 사명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비록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입장을 달리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사명 앞에 겸허히 서도록 촉구하는 왕의 권고에 마음을 모았을 것이다.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 두 사람의 경축사가 대조적이다. 누가 대통령인지 서글픈 현실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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