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인위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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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설교/매일묵상

by Sungmin Kim 2016. 7. 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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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4:1-12 / 인위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2016.7.19.


1 - 3 이스보셋과 그의 부하

4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5 - 7 신복들에게 죽임당한 이스보셋

8 - 12 이스보셋을 죽인 자들을 처형하는 다윗

 

1. 내용주해

1) 이스보셋과 그의 부하

- 그의 든든한 장수였던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스보셋은 망연자실한다. 그리고 그의 통치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사실 아브넬의 북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권력의 중심이었다. 이스보셋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승인이 아니라 아브넬의 지지해 의해서다. 그리고 아브넬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힘이었다.

- 이스보셋에게는 또 다른 장수가 있었다.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이다. 이들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이스라엘 사람인지 아니면 베냐민 지파에 거주하는 브에롯 사람인지는 이견이 있다. 성경의 원문은 베냐민 지파로부터 브에롯사람”(함베에로티:브에롯 사람/ 밉베네비느야민: 베냐민 족속..)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들은 베냐민 지파 속에 거하는 브에롯 사람으로 보인다. 브에롯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점령기에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기브온의 네 성읍 중 하나이다(9:17). 나중에 브에롯에 살던 가나안 부족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자 브에롯은 베냐민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 21장에서는 왜 그들이 도망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울이 유다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기브온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했기 때문이다(21:1-2). 아무튼 이들은 사울과 동일한 베냐민 지파에 속했다. 더군다나 이들이 지휘하는 부대는 주로 습격과 약탈을 하는 정예부대이며 이스보셋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휘관들이었다. 이런 사실은 이스보셋의 왕위가 얼마나 취약했고 그의 죽음이 치욕스러우며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개탄스러운지를 말해주고 있다.

 

2)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 이스보셋의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다른 이야기가 삽입된 듯이 므비보셋을 소개하고 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다. 다윗은 요나단과 언약을 맺고 그의 집안과 후손을 살려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러 정황으로 봐서 안심할 수 없는 없었다. 다윗이 맹세를 지키려고 해도 부하들이 계략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므비보셋이 10살의 어린나이에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하다가 그를 떨어뜨려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이스보셋처럼 사울의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이스보셋이 죽은 후에는 다윗이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3) 자신의 신복에게 죽임을 당한 이스보셋

- 이스보셋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신복들이 배반하여 그를 죽였다. 이들은 마하나님에 있는 왕궁에 들렀는데 그 때 이스보셋이 자고 있었다. 매우 더운 날이었기에 더위를 피해서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누어있었던 침대는 원어로는 밋타이며 3:31에서 상여와 같은 단어로 쓰였다. 아브넬의 죽음이후 무기력한 왕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아마도 그들은 계획적으로 이스보셋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위병을 속이고 밀을 가지러 온 척하며 그가 잠자고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스보셋의 배를 찌르고 머리를 잘랐다. 그들은 다윗에게 자신들이 이스보셋을 죽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머리를 잘랐을 것이다. 그리고 밀을 담기 위해 가지고 온 자루고 그의 머리를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밤새 그들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서 도망하여 아라바 길을 걸어서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갔다. 아라바 길은 아브넬이 기브온에서 요압에게 패하고 마하나님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하나임에서 헤브론까지는 대략 100km이다. 상당히 다급한 속도로 달려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이스보셋을 죽인 자들을 처형하는 다윗

- 그들은 오해하였다. 다윗이 사울과 원수지간이기에 그의 왕위를 이은 이스보셋도 원수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원수를 갚아 주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한 행동이 정당하고 칭찬받을 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을 잘 못 보았다. 사울이 비록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종이며 이스라엘의 위대한 용사였다.

- 다윗은 전에도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을 때 그의 죽음을 좋은 소식인양 보고한 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죽음으로 보상하였다고 응답한다. 결국 그들이 보상을 생각하고 들고 온 이스보셋의 머리는 명백한 살인의 증거가 되었다. 다윗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들을 처형한다. 그들의 수족을 자르고 그 시체를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다. 시체를 욕보일 정도로 다윗이 이들을 처형한 것은 그가 이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스보셋의 부하들이 한 짓임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사울의 집안의 원수를 대신 갚아 줌으로서 오해가 생기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애를 썼다고 볼 수 있다.

- 이런 상황을 통해서 마침내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가 제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윗이 스스로 한 일은 없다. 그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려고 애를 썼을 뿐이다. 그런 다윗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일이라도 그것을 되돌려 의인을 위해 선으로 바꾸신다.

 

2. 적용

1) 인위적인 권력의 최후

-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권력자들의 암투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망은 크고 작고 상관없이 우리 주변에 일어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부부가 서로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길들이기 위해 으르렁대고 싸우는 것은 처음에는 봐줄만하다. 하지만 결국 이혼까지 갈 정도면 자신의 뜻대로 가정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 결과임이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는가. 직장 안에서도 동료들 간의 갈등은 대부분 권력 다툼이다. 노사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갖은 모략과 술수를 동원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지는 못한다.

- 이스보셋은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아브넬에게 의존했다. 아브넬이 있을 때, 자신의 왕권이 보호되고 유지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죽자 무기력해진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사람들은 의존했던 것이 사라지면 자신을 잃어버린다. 이런 사람들 주변에는 늘 또 다른 욕망을 가진 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나를 지탱해주는 힘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2) 인위적인 권력에 의지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차이

- 권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야만 하는 자들은 계략을 꾸미는데 은사가 있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전략가이고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이다. 지난 번 사울이 블레셋 전쟁에서 죽었을 때, 어떤 아말렉의 어린 군인이 계략을 꾸몄다. 자신이 사울을 죽였고 이 기쁜 소식을 다윗에게 전해주면 다윗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이스보셋의 지휘관들이 실제로 무력한 왕을 죽이고 새롭게 부상하는 이스라엘의 차기 왕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 자신의 권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계략을 꾸몄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권력투쟁의 장이다. 멀리 갈 것이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부서간의 갈등, 담임목사와 장도들 간의 주도권 싸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갈등 원인의 대부분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그룹의 권력싸움이다.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상황을 통제하고 뿐 욕망 때문에 권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것이 권력이 주는 힘이요 매력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권력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기반이 약하다.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략을 꾸며야한다. 이런 계략은 거짓이 기초이다. 거짓이 공의 앞에 서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레갑과 바아나가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250리나 되는 그 먼 거리를 하룻밤사이에 달려와 다윗 앞에 섰다. 하지만 그들의 흥분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다윗은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권력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모든 이들이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권위를 주었다. 그러기에 다윗은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견고하게 세우기보다는 하나님의 공의로 그들의 잘 못을 판단하고 죄에 상응하는 법을 집행했다.

-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 주어진다. 다윗의 삶을 본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먼저 묻고 그분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우리를 피조물로 인정하는 삶이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악은 갈 길을 잃어버리지만 선은 자유롭게 우리 곁에서 활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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