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4:1-12 / 다툼의 진짜이유
1 – 3 싸움과 분쟁의 이유
4 – 5 간음하는 사람에게 고함
6 – 10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11 – 12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할 이유
1. 내용주해
1) 싸움과 분쟁의 이유
-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기에 화평케 하는 자들로 부르심을 받았다. 공동체 안에 싸움과 분쟁은 그분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구체적으로 “육신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 또는 ‘정욕’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헤도네’이다. 기쁨, 쾌락이라는 의미이다. 영어 hedonism(쾌락주의)는 이 단어에서 나왔다. 누가복음8:14에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이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쾌락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여지가 없다. 서로 욕망이 대립하다보면 싸우게 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그 욕망을 내려놓기까지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툼을 통해서 쾌락을 즐기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모르는 사람들과는 별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싸움이 잘 일어난다. 야고보는 1절에서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분쟁의 원인은 ‘정욕’이다.
- 그러기에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더욱 집요하게 욕망한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살인까지 불사한다. 여기서 살인은 직접적인 살해행위보다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듯이 형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는 가르침(마5:12)을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요한 사도도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가인의 살인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요일3:11-15). 이렇듯 자신의 욕망대로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더라도 치열하게 다투지만 결코 얻을 수 없다고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왜 얻을 수 없을까?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 첫째는 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하나님께.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의미이다. 뒤에서 그 사실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 두 번째는 구하여도 목적과 동기가 잘 못됐다. 자신의 타락한 정욕을 위해서 구하였기 때문이다. 악한 동기이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신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
2) 간음하는 사람에게 고함
- 야고보 사도는 자신의 정욕을 쫓아 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간음하는 사람들이라고 쏘아붙인다. 간음이라는 뜻은 부부간의 정조와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간의 언약에 대해 강조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늘 깨뜨렸다. 그것을 간음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호세아서이다. 4절에서도 부연하고 있다. “세상과 벗하여 하나님과 등지는 일” 그것이 간음이다. 더욱이 세상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그것은 곧 구원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 5절에서 직접 인용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없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출 20:5; 34:14; 신 4:24 ; 5:9; 6:15; 겔39 :25 등).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 그 성령님이 우리가 세상과 벗하여 살아가는 것을 질투하실 정도로 싫어하신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타적인 사랑을 원하신다. 배타적인 사랑은 그분이 우리를 향한 마음이며 우리가 그분만을 향해 바라보아야 시선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만을 바라본다. 그런 겸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하신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만을 바라보기에 하나님께 시선을 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멀리하신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이끄신다. 내가 사는 길이고 공동체가 사는 길은 그 분과 배타적인 사랑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하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를 미혹하는 그 달콤하지만 참혹한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과 가까이 사귀며 누리는 것을 가장 달콤한 기쁨으로 여기라는 의미이다. 그런 사람들은 함께 공동체에 속한 지체들을 돌아본다. 경쟁이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긴다. 용서하고 배려한다.
4)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할 이유
- 서로 비방한다는 것은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한다는 의미이다.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에 세우신 율법 위에서 재판관이 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넘보는 사람들이다. 율법을 재정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율법을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는 자로서 사람들을 헐뜯거나 깎아내리지 말아야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못하는 것인가?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일이다. 성경의 기준과 가치로 결정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의 정욕을 내려 놓아야한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해야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가까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 됨의 신비로, 삼위일체 하나 됨을 나타내실 것이다.
2. 적용
1) 교회 안에서 공동체에 대한 불만이나 어느 지체에 대한 불평이 있는가? 심지어 다툰 적도 있는가? 왜 그런 마음이 생기는가?
2) 내 자신에 관해서 세상과 하나님 사이 양다리 걸치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럴 때 나의 삶과 영적인 상태는 어떠했는가?
3) 공동체가 다툼이 없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서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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