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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땅밟기

세상읽기

by Sungmin Kim 2010. 11. 4.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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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기독교사회에서는 봉은사 땅밟기 문제와 어느 유명한 젊은 목사의 성추행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목사인 나로서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내 삶에 아주 밀접하게 관계된 일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기독교사회에서 만연해 있는 편향된 신앙의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땅밟기 문제에 관해서, 한국에서 젊은이들을 위해 사역할 때 어느 선교단체 출신의 몇몇 청년들의 이런 '영적'인 행동과 사고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땅히 이들은 지도해야 할 교사요 목회자로서 내가 생각해도 뭔가 잘 못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면 이들의 행동에 동조했던 시절도 있었기에 뭐라 딱히 꾸중할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직접적인 그런 현상에 대한 지적보다는 교인들의 소위 "영적인" 부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 중에 "영"이라는 단어가 수식된 말이 많이 있는데 올바른 성경적인 이해에서 나오는 말인지 먼저 살펴보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이 존재하는 반면에 에베소서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6:12)"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마귀의 간계(6:11)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악한 영들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은 기도할 때- 특히 선교활동을 위해- 어떤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가도록 기도하는 것 같다. 또한 어떤 경우는 거짓, 교만, 분열의 영 등 우리의 마음의 영역까지도 침투해 있는 듯 그런 악한 영이 활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기도를 행하기도 한다. (나도 가끔 그런 기도를 드리곤 한데, 정말 이런 행동들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하는 질문에는 확신이 없다. 확신이 없다면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죄인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자녀로 거듭났다고 할지언정,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순종할 뿐이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지 갑주를 입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듯이 하라는 이야기는 없다. 악한 영을 물리치고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내 개인의 신앙과 인격으로 감당해야할 영적 씨름이다. 여담일 수 있겠지만 봉은사의 기둥을 붙잡고 그것이 무너지기를 기도한다면 직접 기도한 사람이 직접 무너뜨리면 된다. 그것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기도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 될 것이다. 거짓의 영이 떠나가기를 기도한다면 그렇게 기도한 사람이 거짓을 행하지 않으면 된다. 만약 거짓을 행했다면 거짓의 영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죄의 용서를 구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히4:14-10). 선교지에서 그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선포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땅을 밟고 있다면 그 행사 기간에만 땅을 밟지 말고 평생 그 곳에서 땅을 밟으며 그 나라를 선포하며 살는 것이 훨씬 나아보인다. 그 곳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직접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오랜동안 살면서 그들의 마음을 땅을 밟고 옥토로 만들기 위해 개간하고 있지 않는가!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악한 문란의 영이 그 목사님을 유혹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악한 영이 시켜서 했든 본인의 의도로 했든 젊은 여인을 추행했다는 것에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비단 성도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한 젊은이의 인생을 고통 속에 밀어 넣고 또한 그를 믿고 사랑했던 가족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행동을 기독교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소위 '영적인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을까 의문이다. 악한 영들을 잡아다가 그들을 처벌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현존을 너무 추상적이고 초월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데에서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인격 속에 그리고 그 변화된 인격을 통해서 표현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끊임없이' 용서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신다고 믿는다.  끊임없이를 강조한 이유는 끊임 없는 죄의 고백이 없이는 우리의 인격이 그분의 형상으로 잘 다듬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면 어떨까? 우리 마음의 땅밟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나의 교만과 악한 마음을 마구 마구 밟아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교만한 마음을 밟아주면 상당히 아프겠지만 성령님께서 잘 치유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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