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렉을 추적하는 다윗 아말렉을 추적하는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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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을 추적하는 다윗

설교/매일묵상

by Sungmin Kim 2016. 6. 2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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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0:1-30 / 아말렉을 추적하는 다윗


1 - 6 아말렉에게 노략당한 시글락

7 - 10 아말렉을 추격하는 다윗

11 - 20 아말렉을 치고 가족과 가축을 되찾아옴

21 - 31 지혜롭게 전리품을 나누는 다윗

 

1. 내용 주해

1) 아말렉에게 노략당한 시글락

다윗의 군사들은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통쾌한 지혜를 경험하고 블레셋의 진영에서 빠져나와 가족들이 있는 시글락으로 향했다. 아벡에서 그곳까지는 3일 길이다. 하지만 다윗이 마주한 것은 아말렉의 습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성읍과 잃어버린 가족이었다. 아말렉은 지난 번 다윗이 자신의 거주지에 쳐들어와 거민들을 죽이고 가축들을 노략한 것에 대해서 분노를 품고 앙갚음을 할 기회를 노력을 것이다.

다윗과 부하들은 폐어가 된 성읍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목 놓아 울었다. 더 이상 울 힘이 없을 때까지 슬퍼하였다. 그 상실감이 너무 커서 부하들은 다윗을 돌로 치자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다윗의 지도력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다윗은 외부로부터 어려움을 극복하고 돌아왔는데, 내부에서 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다윗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자신도 아내를 잃고 슬퍼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하들이 다윗을 치려고 달려왔을 때 느꼈을 당혹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곤경에 처한 다윗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6).

 

*5절은 괄호로 표시되었다. 후대 저자가 설명을 삽입하였다는 표시이다. 원래 있던 본문이 후대에 한 번 이상 누군가게 의해 편집되어 현재의 최종본으로 확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3:11;13-14, 김구원교수).


2) 아말렉을 추격하는 다윗

-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해서 하나님께 묻는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추격해서 모든 것을 되찾아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였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호와와 늘 함께 동행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오는 축복이다.

다윗은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아말렉을 추격한다. 시글락에서 남쪽으로 24km 떨어진 브솔 시냇가에 도착하자 다윗은 200명의 군사를 그곳에 남겨두게 된다. 그들은 너무 지쳐있었다. 군사들은 이미 시글락까지 3일 길을 행군한 상태인데다가 브솔까지 오면서 더욱 지치게 되었다. 지쳐있다는 단어에는 시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죽을 만큼 지쳐있는 200명이 남게 된 것이다. 다윗은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숫자의 많고 적음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래서 흔쾌히 그들이 남아 있는 것을 승인했을 것이다.

 

3) 아말렉을 치고 가족과 가축을 되찾아옴

- 다행이도 들녘에서 아말렉의 노예로 있었던 한 이집트 소년을 만나서 모든 정황을 소상히 듣게 된다. 아말렉에 속한 주인이 그 소년이 병들자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 지친 소년을 만난 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이끌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다윗은 그 소년의 인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블레셋이 머물고 있는 진영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사방에 흩어져서 전리품을 가지고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완전히 무장해제한 상태였다. 다윗이 블레셋군대에 합류에 전혀 예상치 못한 아말렉 군대는 다윗의 군사들이 새벽부터 그 이튿날 저녁까지 아말렉을 진멸했다. 단지 도망간 사람은 낙타를 탄 젊은이 4백 명이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다 되찾았다. 그리고 아말렉이 노획한 것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4) 지혜롭게 전리품을 나누는 다윗

- 다윗의 군대는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되찾았다. 그리고 더불어 전리품같이 덤으로 챙겨왔다. 돌아오는 중에 지켜서 뒤에 쳐져 있는 2백 명의 동료들을 만났고 그들은 서로 환영했다.

- 하지만 승전의 기쁨과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나누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사들 중에 악하고 야비한 사람들이 낙오된 동료들과 전리품을 나누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야비한이란 뜻은 원어로는 벨리야알이며 불량스럽고 무가치하다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는 나발을 평가할 때도 사용했던 단어이다(25:2). 이미 이런 사람들을 평가하는 표현에서 문제의 이유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나발이 그 이름에 걸맞게 바보스럽고 야비하게 다윗을 거부했던 것처럼 이들도 악하고 야비하였기 때문에 동료들과 노획물을 나누기 싫어하고 자신들에게 돌아갈 몫을 더 챙기려 했던 것이다.

- 그러나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몇 명이 남고 참전하든지 하나님은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전리품은 모두 동일하게 나누어야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것을 이스라엘의 규례와 율례로 삼았고 오늘날까지 그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설명한다(25).

-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사실 거의 대부분이 내가 노력해서 얻었기 보다는 그저 주어졌다.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건들, 즉 많은 재능들과 집안 배경 등은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훨씬 성공할 기회가 높다. 그러기에 자신의 지위나 재물, 학식 등은 함께 나누어야한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특권이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 은혜를 나누라고 주셨다.

- 다윗은 또한 전리품 중의 일부를 유다의 장로들에게 선물로 보낸다. 아말렉과 싸운 지역은 유다지역에 속하였기에 전리품 중에는 그들의 소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들에게 전리품을 나눌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것은 다윗이 전리품을 자신의 몫으로 취하지 않고 나누려는 선한 의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물을 보낸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윗은 유다의 장로들을 친구로 호칭한다(26). 다윗이 유다 출신이기도 하지만 31절에 보면 이미 유다 남방지역을 중심으로 그들과 왕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지역 중에는 헤브론도 있었다. 그곳은 나중에 다윗이 왕으로 추대된 지역이다. 다윗은 틈틈이 유다의 유력인사들과 교류하며 이스라엘로 돌아갈 기반을 만들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요약: 블레셋과 함께 싸워야하는 진퇴양난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빠져나오게 해서 기쁨 마음으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지만 큰 아픔과 고통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들은 동요했고 다윗을 위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말렉의 노략질로 인해서 잃은 것은 하나도 없이 모두 되찾았고 더욱 풍성한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이를 계기로 유다의 장로들과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하게 되었고 왕으로서 입지를 더욱 든든하게 세우게 되었다. 다윗은 일련의 사건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굳게 신뢰하였을 것이다. 성경은 다윗은 어려움에 빠질수록 더욱 굳게 하나님을 의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6).


2. 적용

1) 승리 후에 찾아온 참담한 현실

- 이상하게도 우리는 어려운 일을 믿음으로 이겼던 극적인 경험을 하고 난 이후, 그것을 마음에 담고 감사하거나 행복해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고통스런 현실을 맞닥뜨리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다윗이 그랬다. 블레셋의 진영에서 그들을 통쾌하게 속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들은 폐허가 되고 가족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마을은 소름끼치는 침묵만이 흐르는 광경을 보아야만 했다.

이런 순간 다윗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는 지도자로서 부하들과 함께 울면서 슬퍼했다. 통곡하며 더 이상 기력이 다 할 때까지 함께 울었다. 물론 자신도 가족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이기에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슬픔의 감정을 숨김없이 부하들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부르짖고 통곡했다. 세상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력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긍정의 삶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기를 원하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의 가족 공동체는 지도자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가족 구성원과 함께 부족함을 채워간다. 그런 지도자에게 기꺼이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을 헌신할 수 있다.

다윗은 또한 어떻게 행동했는가? 처참한 상황을 접한 부하들이 순간적으로 다윗을 돌로 치려고 까지 했다. 그 만큼 고통스런 상황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곤경에 처했고, 몹시 당황스럽고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을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 그럴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평상시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묻는 다윗의 신앙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다윗이 부하들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들과 동일하게 아픔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맞서서 자신을 위해 리더쉽의 권위를 세울 이유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평상시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아닌가! 어려울수록 남 탓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것,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가장 지혜롭고 실행 가능한 믿음의 실상이다.


2) 자비로운 대접이 가져다준 전쟁의 실마리

-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신실한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윗은 아말렉을 추적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다윗의 군사들은 지쳐있었다. 도저히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군사들에게 브솔 시냇가에서 쉬도록 배려한다. 극도로 피곤해 있었던 200명을 남아서 소유물을 지키게 했다.

또한 다윗은 시간의 여유가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길에서 만난 쓰러진 소년을 극진히 간호한다. 그는 아말렉의 노예였고 병들자 버림받았다. 그가 회복되자 다윗의 군사를 아말렉이 있는 진영으로 안내했다. 무심코 도운 이를 통해서 다윗은 수월하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잃어버린 것과 가족을 되찾았다. 뿐만 아니라 아말렉이 노획한 물건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좇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고, 소자를 돌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주변을 오히려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하려 그 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분의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늘 이런 시험대를 만난다. 우리의 신실한 행동을 통해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3) 감사, 차별 그리고 은혜

- 전쟁에서의 승리는 참 값진 것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승리의 결과를 참여한 사람들만의 소유물로 여겨도 타당하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원인이 따로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다. ,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아말렉을 이기게 하셨다. 그러므로 적진에서 직접 싸운 사람이든, 지쳐서 낙오된 사람이든 모두에게 동일한 승리의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일부 무리가 낙오된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지 말자고 요구한다. 자신들은 목숨 바쳐 싸웠는데 쉬고 있었던 낙오자들이 못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쉬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후방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더욱이 그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었다.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평가에서 들어나듯이 악하고 야비하기때문이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분을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수고가 돋보이고 손해 보기 싫어진다. 그들에게 감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오만과 무례함으로 동료를 차별하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고 전리품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상기시키고(23) 모든 것을 차별 없이 나눈다. 접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이든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든 모두가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차별 없이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동족이라는 이유로 전리품의 일부를 유다장로들과 나눈다. 그들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다윗은 승리의 기쁨에 참여시킨다.

- 우리는 주님과 연합된 한 몸의 지체들이다. 그 몸으로 세상 속에서 영적 전투를 벌이며 살아간다. 우리는 각기 다른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은 모두 주님께로부터 나온다. 또한 아무리 연약한 지체라도 그들이 있기에 몸이 존재한다. 그 사실을 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나라의 한 백성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의 한 몸에 참여시킨다. 그 몸에 붙어 있는 사람들은 재능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재산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그 몸의 줄기를 통해서 풍성한 하늘의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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