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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아침에 시편47편 묵상

설교/매일묵상

by Sungmin Kim 2021. 3. 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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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벽돌 만드는 노동자들. [baslibrary.com] 출처 : 위키리크스한국(http://www.wikileaks-kr.org)

1

여호와를 찬양하자라고 초청

 

2-4

여호와를 찬양해야할 이유(1)

1) 지존하신 하나님이 온 땅에 큰 왕이 되시기 때문

- 여호와께서 만민과 나라들을 야곱의 백성들에게 복종케 하심

- 야곱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기업을 주심

2) 출애굽 당시 여호와께서 능력으로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역사를 상기하게 됨

 

5-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 즉위하심

1) 성전에 법궤가 올라가는 장면을 연상케 함

2) 왕이 즉위할 때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백성들의 환호소리가 들리듯이 여호와께서 성전으로 올라가심

 

7-9

여호와를 찬양해야할 이유(2)

1) 여호와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시기 때문(2절 반복)

-‘지혜의 시로 찬양하자고 초정함

- 환호와 열광보다는 잔잔한 묵상으로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시고 어떤 큰일을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하기를 권함

2) 성전 중심의 선택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소망함

- ‘세상’(에레츠)은 온 땅과 같은 단어

-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고 온 땅의 왕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가 담겨 있음

 

묵상글

 

오늘 삼일절이다.

여느 해처럼 별반 다를 것이 지나갈 일이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뒤숭숭해서 홀로 책상에 앉아 이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삼일절이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인다. 그저 하루 휴일에 불과할 뿐. 그래서 더욱 의지적으로 이 날을 상기해야하지 않겠는가.

선조들의 희생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러한 축복이 있었겠는가. 언제곤 역사는 되풀이 될 텐데,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제국주의는 또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맘몬이든 아니면 사이버 세상의 권력이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빼앗아갈 세력들은 우리 주변 가까이 밀고 들어와 있다.

 

난 삼일운동이 그저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는 운동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독립선언서를 발기했던 33인은 모두 종교인들이었다. 천도교15, 기독교16, 불교2이었다. 나는 이들이 한결같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초월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 나라의 힘을 빌려서 폭력으로 압제당하고 그 존재의 존엄을 무시당하고 짓밟힌 것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저변에 깔려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인간이 또 다른 인간으로부터 무참히 짓밟힌 것에 대한 강한 저항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정신은 평소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분을 신뢰해온 사람들에게 스며들어갔을 것이다.

 

이 시에서도 구원의 해방과 기쁨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초청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로 살 때 그들의 고통을 보셨고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해방시켜 주셨다. 이스라엘의 자유를 방해하고 끝까지 노예 삼고자 했던 이집트를 바다에 수장시키셨고, 참된 자유와 안식이 있는 가나안까지 여정을 방해했던 뭇 나라들을 물리치셨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충분히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높임을 받을 지존하신 왕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성전을 이 땅에 가져오셔서 백성들의 중심에 땅의 성전을 마련하셨다. 이 세상을 눈에 보이듯이 다스리시기 위해서이다.

먼저 선택되어 자유와 해방을 맛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림으로 온 세상 나라와 백성들에 참된 자유를 알려야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릴 것인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인간 개개인에 미쳐서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참된 인간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진정한 사명이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만백성,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먼저 사랑과 정의, 평화와 공의가 흐르는 문화를 만들어야했다. 그런 특별하고 구별된 문화를 보며 세상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성전으로 모여들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의 독립을 통해서 참된 인간해방을 위해 애써왔다. 참된 자유와 평화가 있는 나라, 공의와 사랑의 물결이 흘러 넘쳐 모든 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자유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들의 희생으로 자유를 만끽한 우리들이 다시 제국주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고 있는 현상들을 자주 목격한다. 일제의 통치를 그리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통치의 잔재들을 기회삼아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일제의 강점기만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 그늘 아래에서 자유와 안식을 빼앗기며 살아가고 있다. 최고의 위치에 올라야만 최상의 자유가 있다는 잘 못된 가치들이 우리에게서 생명마저 빼앗아 간다. 속지말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한 하나님형상으로서의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존귀함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으로 다스리고 우리는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참된 자유를 누리며 무한한 창의적인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본디 누구를 억압하는 것도, 억압받는 것도 거부하는 자유롭게 날아가는 나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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