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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

내가 읽은 책

by Sungmin Kim 2012. 11. 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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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 - 이청준(2008)

 

올해 들어 처음 완독한 소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의 한 사람, 이청준 씨가 지은 소설이다. 그 분의 책을 읽고 난 후는 항상 순수함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고향이 그리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분의 책들은 많은 부분 고향의 산천과 사람들을 배경으로 하고서 그 속에서의 삶들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분의 고향은 나의 고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옆 동네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을들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정겨운 이름들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천관산은 그 주변마을을 아우르며 우뚝 솟아 있다바다와 가까운 평지에서 해발 723m까지 솟구쳐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올라보면 운 좋게 맑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일 때도 있는데 마치 그 지붕이 삿갓모양 같다. 이 산은 기암괴석과 억새풀로도 유명하지만 특히 많은 돌탑으로도 유명하다. 왜 돌탑이 그렇게 많이 세워지게 되었을까? 이 이유가 소설을 풀어가는 중요한 열쇠이다. 

 

내가 천관산을 처음 올랐을 때는 중학생 시절, 교회 중고등부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어떻게 가야할 지 정확한 루트를 알지 못해 무작정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지쳐서 중간쯤에 올라가다가 멈춰서 도시락을 까먹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곳이 탑산사 주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은 탑산사 앞까지 포장된 도로가 나있다. 그 절 이름이 왜 탑산사인지도 그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수많은 돌탑들이 도로를 따라 옹기종기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타지 생활을 하다가 명절을 맞아 고향을 갈 때면 꼭 천관산을 오르곤 했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그 산에 올라 남해를 바라보며 노후에 다시 와서 이곳에 다 기도원을 세우면 어떨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 소설을 읽다가 그 전에 이 산에 헤아릴 수 없는 수백 개의 사찰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완전히 부질없는 생각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관산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태산이를 잉태하게 된다. 물론 윤리라는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자면 불륜을 통한 출생이다. 내용인 즉, 마을 남자 여섯이서 탑을 쌓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갔을 때, 몇 해 전 마을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자두리라는 여인을 그들 무리 속에 포함시켰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그 여인은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정신적으로 조금 모자라면서도 이집 저집을 떠돌면서 일손을 도와주며 살았다. 물론 어떤 여유있고 덕망 있는 좌수댁에서 거처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탑을 쌓은 일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일제시대인지라 관공서에는 금지했다. 그 이유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들은 해마다 어느 시기만 되면 아무도 모르게 또는 마을 사람들의 묵인 하에 산 속에 몇 일을 머물면서 탑을 쌓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사건 후에 자두리여인은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좌수댁 조카의 집에서 길러지게 된다. 그 아이가 태산이다.

 

 

 

태산이는 그의 처지를 숙명처럼 여기거나 그 시대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결국 그는 중학교를 거처 광주에 있는 사범학교까지 진학하며 소설의 막을 내린다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록금이 없어서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태산이는 그 자신이 직접 아직 밝혀지지 않는 여섯 명의 아버지를 찾아가 등록금을 마련한다이 장면에서는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인생의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신화를 개척할 당당한 사람처럼 여겨지게끔 만든다.

태산이는 태생이나 삶 자체가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을 대표하거나 외세에 이리저리 유린당하고 있는 연약한 조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작가는 민중들의 삶의 현실과 희망을 태산이에게 이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이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고 굳굳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조국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절망하기보다는 그런 현실을 박차고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을 붙잡았던 장면이 있다. 그가 처음 글을 배우고 의식을 깨우치게 된 곳이 바로 교회였다는 것이다. 아마 미국남장로교 선교사가 세웠던 교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마을에도 이청준씨가 자랐던 곳에서처럼 그만큼 오래된 교회가 있었고 나 또한 어린 시절의 대분의 추억은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다.

 

비록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태산이를 잉태하고 키워냈던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를 천관산을 통해서 묘사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고백했듯이 그는 그가 자란 고향과 고향 교회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소설, 예를 들면, ‘낮은데로 임하소서’라든가 영화 ‘밀양’의 소재가 되었던 ‘벌레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신앙을 엿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소설을 접할 수가 없다. 지난 2008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는 유언같은 부탁은 고향 교회를 연구해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200가구가 채 안되는 작은 마을에서 그 동안 40여명의 목사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란다. 하기야 나의 고향 교회에서도 많은 목사들이 배출되었다. 우리 집안에서만 두 명이 있는 것을 보면 알지 못하는 선배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가 뒤늦게 꿈꾸었던 '신화'의 이야기들을 글로 담는 일들을 못다 이루고 갔지만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신앙의 깊이를 눈치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실존으로 형상화되도록 살기를 권면하고 있는 듯하다.

 

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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